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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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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갈대라는데 …'마음'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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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이나 의식은
'물리적 자극'이란 주장 강해져
만약 좀비가 존재한다면
희노애락 같은 마음은 없어
AI가 인간 흉내내는 시대
본성에 대한 논쟁은 진행중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근대의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를 이렇게 요약했다. 파스칼에게 인간은 갈대같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세계의 일부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세계의 나머지와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능력이 식물이나 동물이 아니라 인간에게 고유하다는 생각은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다는 더 넓고 오래된 생각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 인간이 신체와 구별되는 마음, 정신, 이성, 의식 등을 가진다는 생각도 오래전부터 꾸준히 발견된다. 기독교는 영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플라톤은 최고로 좋은 이데아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영혼이 신체의 감옥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가 육체와 분리되는 모든 지식의 토대인 반면 동물은 의식 없이 태엽이 감긴 대로 움직이는 '자동 기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신체와 독립된 정신을 가진다는 것을 의심하게 됐다. 이러한 '유물론적' 생각이 옛날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현대 과학의 발달은 이러한 생각에 불을 더 강하게 지폈다. 신경생리학에서는 우리가 정신적이라고 보는 대다수 문제들의 원인이 사실은 신체적이거나 물리적인 문제라는 걸 밝혀낸 듯하다. 예를 들어 단기 기억 상실은 해마의 손상과 연관이 있고 사이코패스는 전두엽 기능과 연관이 있다. 정신현상과 신체현상 관계들을 찾아나가는 작업은 최근까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나아가 정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신체나 물리적인 자연세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마음'이라는 말을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등 정신적인 상태나 활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하는 표현이라고 가정하자. 철학자들은 마음이 신체 또는 더 나아가 물리적인 것에 의존한다는 주장을 물리주의(physicalism)라고 부른다. 물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심리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물리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예를 들어 고통스러운 느낌은 정신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런 느낌은 사실 얼굴의 찡그림이나 C-신경섬유 활성화 같은 물리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이렇듯 정신적인 이야기를 물리적인 이야기로 완전히 대체하는 작업을 환원(reduction)이라고 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제공하려는 사람들을 환원적 물리주의자라고 한다.

하지만 환원적 물리주의는 정신적인 것에 물리적인 것 이상이 있다는 반론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고통스러운 느낌이 얼굴의 찡그림에 불과하다면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참는 사람은 실제로도 아프지 않다고 해야 하는가? 고통스러운 느낌이 C-신경섬유 활성화에 불과하다면 그런 신경섬유가 없는 문어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가?

이러한 어려움들 때문에 물리주의자들은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관계가 환원처럼 강하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두 번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되지는 않더라도 물리적인 조건이 동일할 때 정신적인 것이 다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어떤 것이 물리적으로 변하지 않았는데 정신적으로 변할 수는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와 원자 단위까지 똑같은 복제인간이 있다고 해보자. 물리주의자들에 따르면 나와 그 복제인간은 똑같은 지능, 성격 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과 상관없이 변할 수 없다. 물리적인 것이 변해야 정신적인 것도 변할 수 있다는 관계는 수반(supervenience)으로 불리고, 정신과 물질이 이러한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환원적 물리주의자로 불린다.

이 주장은 정말 맞을까? 한 철학자는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에 수반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좀비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우선 철학자들이 말하는 좀비가 무엇인지를 이해해보자. 영화 속 좀비는 대체로 공격적이고, 사람을 잡아먹으며,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엉거주춤하게 걷는 편이다(물론 좀비를 이와 다르게 그려내는 작품들도 많다. 심지어 영화 '웜바디스'(2013)에서는 남자 좀비가 여자 주인공과 연애도 한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좀비는 다음의 특징들이 있는 가상의 생명체다. 첫째, 좀비의 몸은 인간의 몸과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똑같고 겉보기에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행동한다. 말 그대로 인간과 물리적인 모든 점에서 똑같다. 하지만 둘째, 좀비에게는 어떤 종류의 의식도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좀비에게는 우리가 어떤 색깔이나 소리나 맛을 경험할 때 생기는 특이한 느낌 같은 것이 없다.

좀비 사고실험은 이렇게 진행된다. 첫째, 우리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좀비를 상상할 수 있다. 둘째, 좀비가 상상 가능하면 좀비는 실제로도 가능하다. 이는 단지 공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구현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에바(Eva)'는 사람처럼 대화하는 건 물론이고 웃고 찡그리는 등 표정도 지을 수 있다.

게다가 생명공학이 발전되어서 로봇을 쇳덩이가 아니라 유기체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와 물리적으로 구성이 완전히 똑같은 좀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좀비가 실제로 가능하다면 이는 어떤 것들이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정신적으로 다른 반례가 된다. 좀비는 우리와 물리적으로 똑같지만 정신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좀비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는 시늉은 할 수 있지만 그 맛을 느끼지는 못한다. 결국 좀비가 실제로 가능하다면 정신·물리 수반은 틀렸다.

최근 챗GPT 같은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류는 마음의 작동 방식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다만 좀비 사고실험은 의식이 우리가 아무리 물리적으로 흉내 내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시사한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지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