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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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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해가 뜬다는 인과추론…멀쩡한 일상 이끄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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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과 귀납의 문제
과거 패턴으로 미래 예측
필연성으로 연결해왔지만
"필연적 연결 정당화 안돼"
흄이 주장한 세계의 균일성
상상력을 통한 습관적 결합
실생활에 유용해 유지될 뿐
사진설명
게티이미지뱅크

내일 갑자기 해가 뜨지 않는다면? 매일 걷던 등굣길이 푹 꺼진다면? 어떤 우주망원경으로도 잡히지 않는 소행성이 불현듯 나타나 지구와 충돌한다면? 문학 작품들은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이런 고민을 하고 산다면, 아마도 일상생활을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 내기 어려울 것이다. 내일 해가 뜨지 않을 것을 걱정하면서 잠들고, 등굣길이 푹 꺼질까 봐 불안해하며, 소행성 충돌로 자신의 삶이 끝날 것을 매일 염려하는 사람은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우리가 미치지 않고 일상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대체로 우리가 겪어왔던 대로 전개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날들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가 떴고, 등굣길은 항상 평평했으며,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아직 없다. 우리는 세계의 패턴을 겪어보고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예측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고 항상 그럴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일상에서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중요하다. 과학은 이러한 패턴의 집약체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계속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단지 패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반 아이들의 필통에 들어 있는 필기구의 개수가 공교롭게도 한 달 동안 매일 10개씩이었다. 나는 이 관찰을 토대로 내일도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필기구를 10개씩 넣어올 것이라고 예측할 것인가? 친구들이 필기구를 챙겨왔던 패턴만 본다면 그런 결론을 내릴 법하지만 우리는 그런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다. 당장 내일 수민이가 형광펜 2자루를 사 와서 예측을 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의 교훈은 우리가 과거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의 패턴이 공교로운 일치가 아니라 어떤 필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원인과 결과의 개념은 바로 이런 필연성 개념을 가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수가 도둑질을 했을 때 우리는 그를 비난한다. 바꿔 말하면, 영수의 도둑질이 원인이 되어서 우리의 비난이라는 결과를 일으킨다. 우리는 이 인과관계를 도둑질에 이어서 공교롭게도 비난이 일어나는 패턴만으로 추론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둑질이 비난을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도둑질과 비난이라는 인과관계는 모종의 필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둑질은 반드시 비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과추론은 일상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학은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인과관계를 찾는 학문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접촉하여 그 다른 물체를 이동하게 하는 패턴이 그저 우연히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우연의 일치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학문의 대상이 될 가치는 없어 보인다. 과학자들은 그 이상을 찾고 있다. 이 물체의 운동과 저 물체의 운동 간에는 전자가 일어나면 후자가 반드시 일어나는 어떤 필연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인과에 관한 이런 지식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과학을 성립하게 하는 주춧돌이다.

이러한 필연적 연결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1711~1776)은 이러한 연결이 정당화될 수 없고, 따라서 인과는 세계에 대한 지식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견 황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인과관계를 학습하고 믿으며 이에 따라서 살아가지 않는가? 누가 감히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있을까? 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전적인 분석에 따르면 어떤 명제를 안다는 것은, 1) 그 명제가 참이고 2) 그 명제를 믿으며 3) 믿었는데 우연히 참일 뿐만 아니라 그 명제가 참이라는 게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당화해야 할 것은 미래의 전개가 과거의 패턴을 따르리라는 것, 즉 세계의 균일성(the uniformity of the world) 논제다. 흄은 명제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증명을 통한 정당화다. 우리가 흔히 연역 논증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경우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반드시 따라 나온다. 균일성이 증명으로 정당화된다면 여태까지 해가 떴다는 전제로부터 내일도 해가 뜨리라는 결론이 반드시 따라 나와야 한다. 하지만 내일 해가 안 뜨는 일이 (개연성이 매우 떨어지더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여태까지 해가 떴어도 내일 해가 안 뜰 가능성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흄은 증명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것들은 경험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인과 추론에서 특히 옳아 보인다. 우리는 경험된 원인과 결과를 통해서 미래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한다. 즉 여태까지 철수가 도둑질로 비난을 받았으면, 앞으로 누군가가 도둑질할 때 비난이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앞서 봤듯이 균일성은 과거의 패턴이 미래의 패턴과 우연히 일치하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치한다는, 즉 필연적 연결의 사실을 포함한다고 한다. 흄은 이 필연적 연결을 경험적으로 발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인과추론의 허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저 이 사건 이후에 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많이 관찰했을 뿐이지, 이 사건이 저 사건을 일으키는 어떤 필연성은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연성은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흄은 인과가 상상력을 통한 습관적 결합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습관이 비슷한 것끼리 묶고, 그것들이 마침 실생활에 유용하기에 그런 습관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왜 그런 습관은 공교롭게도 유용할까? 우리의 인과적 믿음이 실제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