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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삶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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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내기'와 합리적 선택
'매트릭스'처럼 기로에 섰을 때
경우에 따른 손익 비교할 수 있어
대부분 가장 이득인 선택하지만
계산만으로 의사결정 하다보면
진실 외면한 자기기만 빠질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에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 상황에 대한 유명한 은유가 나온다. 이 은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체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다. 그들은 인간을 가두고 관을 꽂아서 그들의 체계를 굴리기 위한 에너지를 추출한다. 그들은 인간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의 시뮬레이션을 우리 뇌에 주입한다. 그래서 인간이 인식하는 현상 세계는 실제 세계와 괴리된다. 하지만 모피어스를 위시하여 진실을 깨달은 몇몇 인간은 시뮬레이션을 거부하고 실제 세계의 지배권력에 저항한다.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를 만나고 그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시한다. 모피어스는 어떤 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어떤 결과를 겪게 될지 설명한다. 즉 빨간 약을 먹으면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 끔찍한 실제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반면, 파란 약을 먹으면 시뮬레이션에 계속 안주할 수 있다. 네오는 진실을 깨닫는 쪽을 택했고, 디스토피아의 저항군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극중에는 빨간 약을 먹기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이먼도 있다. 그는 진짜 세계의 스미스 요원의 설득으로 시뮬레이션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진짜 세계는 그에게 너무나도 끔찍해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오와 사이먼은 인생의 모양을 크게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선택 앞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이런 선택은 비단 허구의 인물들만 겪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인생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대학을 갈지, 누구와 연애하고 결혼할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이 시기에 집을 살지 말지 등 우리에게는 평생을 좌우하는 순간의 선택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네오와 사이먼 각자에게 선택의 이유가 있었듯이, 우리의 선택에도 이유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는 이에 걸맞은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이유를 대는 게 좋을까.

 

서양 근대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결정 이론(decision theory)으로 불리는 현대의 합리적 선택 이론의 철학적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시하고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로 불리는 그의 사고실험은 어떤 선택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이다. 우선 그에게서 인생의 중요한 선택 상황은 종교적인 문제, 즉 신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상황에서 선택하는 방법은 각 선택지가 내게 얼마나 많은 이득을 줄지를 비교해 가장 큰 이득을 주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파스칼은 신앙과 불신앙의 손익을 이렇게 결정한다. 우선 신앙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와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 나뉘고, 이는 불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앙의 손익은 신앙이 있으면서 신이 존재하는 경우의 손익과 신이 부재하는 경우의 손익을 합한 것이고, 불신앙의 손익도 마찬가지다. 이 총 네 가지 경우를 따져보자. 첫째, 신앙+신의 존재. 이때 신은 그를 믿는 자에게 무한한 선을 내릴 것이고, 손해는 없을 것이다. 둘째, 신앙+신 부재. 이때 없는 신을 믿는 이익은 없을 것이고, 종교적 삶을 위해 세상의 즐거움을 조금 포기해야 하겠지만 그건 신이 있었다면 줄 이익에 비하면 하찮은 손해다. 셋째, 불신앙+신의 존재. 이때 신은 그를 믿지 않는 자에게 무한한 벌을 내릴 것이고, 이득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넷째, 불신앙+신의 부재. 이때에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제 결산을 해보자. 신앙의 손익은 첫째와 둘째를 합친 것이고 불신앙의 손익은 셋째와 넷째를 합친 것이다. 신앙의 이득과 불신앙의 이득을 비교할 때 신앙이 훨씬 이득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지는것이 합리적이다.

 

이 아이디어를 현대의 결정 이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보자. 우리는 선택지 A(신앙)와 B(불신앙)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효용을 제공하는 선택지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효용의 비교는 선택 시의 이득과 그 선택지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곱한 것, 즉 기대효용(expected utility)의 비교로 이뤄진다. 그래서 결정 이론에서 합리적 선택이란 기대효용을 최대화하는 선택이다. 파스칼의 경우 신의 존재와 부재의 확률이 모두 반반이라고 가정하면, 기대효용이 가장 높은 것은 신앙을 선택하는 경우다.

물론 파스칼의 내기 논증에 대한 반론도 많다. 만일 신이 우리에게 복은 내리지 않고 처벌만 내리는 가학적인 신이라면 신앙의 이익은 다시 계산돼야 할 것이다. 또 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신이 모두 존재하거나 신이 모두 부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이고, 제3의 선택지에서의 이익도 고려한다면 총기대효용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파스칼의 내기에서 가장 꺼림칙한 것은 신이 부재하는데도 신앙을 가지는 경우를 고려에 넣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플라세보(placebo) 상황과도 같다. 효능이 전혀 없는 알약도 효능이 있다고 믿으면서 복용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등의 이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종류의 자기 기만이 이익과 상관없이 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매트릭스의 네오도 빨간 약 선택지가 주는 기대효용이 철저히 낮을 것을 알고도 그것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이익이 어쨌건 간에 진실을 알아야 하고 그것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손익계산 이상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결정은 다른 합리적 방법으로 이뤄지거나, 아니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결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