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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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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태아와 지금 나는 같은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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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사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파리 초원의 사자는 신체적 발육이 완성되고 여러 가지 생존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원가족에서 방출된다. 하지만 인간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단순히 먹고사는 고민만 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의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정체를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아마 유일한 종일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 그런 차이를 낳는 인간만의 독특한 성질은 무엇일까? 일단 그 차이에 '인격성(personality)'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자. 우리가 동물에는 없는 고등한 정신적 능력 또는 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세계를 파악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복잡한 추론을 수행하고 행동 계획을 짠다.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것, 즉 인격성이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많은 질문을 던져왔다.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성격 규정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의 답은 지금 나인 사람, 미래의 나이고 싶은 사람이 될 것이다. 또 보편적인 인격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있다. 무엇이 인격을 인격 되게 하는가, 무엇이 인격을 비인격과 구별하는가?

인격의 동일성 질문도 있다. 옛날의 저 태아와 오늘의 내가 동일한 자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우리가 복잡한 존재인 만큼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다양하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 어떤 사람이며,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답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다. 이는 과거의 그 사람과 미래의 그 사람이 지금의 나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그 사람과 지금의 내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일반적으로 말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발견해왔다. 인격의 동일성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가지 입장을 통해 인격의 동일성을 둘러싼 문제를 알아보자.

 

 

첫째, 많은 철학자는 과거의 어떤 존재에 대한 기억을 가지는 것이 나와 그 존재를 동일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데 동의해왔다. 이는 심리적 연속성 견해라고 불린다. 즉 과거의 어떤 존재와 나는 기억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널리 지지되는 것은 정신적 속성이 인격에 중요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정신적 속성을 가지지 않는 존재와 우리를 동일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는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았던 태아, 수면, 식물인간 등 우리 의식의 전원이 꺼져 있는 때에도 우리는 그 상태를 우리 인생의 한 단계에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심리적 연속성 견해를 고수하려면 태아, 수면, 식물인간 상태를 포괄할 수 있는 더 느슨한 심리적 개념이 필요해 보인다.

 

 

심리적 연속성이 그런 상태들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더 넓게 이해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우리 뇌는 좌뇌와 우뇌 기능과 저장 내용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뇌의 한쪽 반구에 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종양이 생겼을 때에 그 반구를 절제하는 수술도 가능하다. 이제 철수의 뇌의 반구를 절제해 어떤 육체에 이식했다고 해보자. 그리고 수술 후 철수를 영수라고 부르고, 새 반구가 이식된 사람을 민수라고 해보자. 철수는 누구와 동일인인가? 심리적 연속성 견해에서 이는 답하기가 어려운데 영수와 민수는 철수의 뇌와 내용과 기능이 거의 비슷한 각 반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수와 민수는 철수에 관한 기억을 동일하게 간직하고 있다. 철수는 두 명인가? 아니면 철수는 수술과 동시에 사라졌는가? 심리적 연속성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기에 매우 약한 견해일 수 있다.

 

둘째, 어떤 철학자는 신체적, 즉 물리적 특징이 우리 인격의 동일성에 중요하다고 본다. 동물주의(animalism)로 불리는 이 견해에서 우리는 여타 동물 종과 같은 동물, 하나의 생물학적 종일 뿐이다. 이 견해에서 인간 종을 다른 종에서 구별하는 것은 오로지 신체 구성이나 행동 방식 같은 생물학적 특징뿐이다. 이 견해는 인격의 동일성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닐 수 있는데 인공지능, (만일 있다면) 천사 등 동물이 아닌 인격에 대해 동물주의가 할 말은 없기 때문이다.

뇌 수술 사례에서 물리적 견해는 영수가 철수와 동일인이라고 할 텐데 왜냐하면 영수는 뇌 반쪽을 제외하면 철수의 신체 기관을 모두 보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 수술을 더 과감하게 해보자. 이번에는 철수의 뇌와 영희의 뇌를 서로의 몸에 온전히 이식할 수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온전히 영희의 뇌를 가진 철수는 뇌를 제외한 자신의 신체 기관을 모두 보유할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철수인가? 물리적 견해는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이 답변은 왠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뇌는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기관이고, 그것을 중요하게 하는 것은 정신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두 견해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인격을 인격이 되게 하는 요소들은 매우 복합적이고, 인격은 상황에 따라 달리 규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매우 느슨하고 약해서 우리는 상황과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사춘기를 계속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