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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모두가 꿈꾸는 시간여행은
과거 잘못된 선택을 반성하고
더나은 삶 만들려는 노력의 일부
돌아가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현재 나의 후회는 정당한 것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시험을 보고 있다. 당신은 성적의 등급을 결정짓는 문제의 답을 고르느라 쩔쩔매고 있다. 3번일까, 4번일까? 고심 끝에 당신은 3번을 찍는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답을 맞추면서 당신은 답이 4번이라는 것을 채점도 하기 전에 깨닫는다. 성적표를 받아 든 당신은 3번을 찍은 걸 후회하면서 시험 당일로 되돌아가 다시 4번을 고르고 싶어할 것이다.

시간이동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다. 시간이동은 얼핏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간이동, 특히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적표를 받은 당신의 심정을 일상에서 자주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했거나 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고, 그 시점으로 돌아가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하거나 막기를 원한다. 시간이동에 관한 사유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후회와 더 나은 삶에 대한 바람에서 비롯된다.

시간이동에 관해 철학자들이 할 말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공간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물리학이다. 게다가 물리학자들은 현재의 물리학에서 시간이동 가능성을 배제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간이동이 기술적으로 실현되는 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이 이런 이야기에 얹을 숟가락이 있을까? 있다면 왜일까?

철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이동 가능성의 세 가지 수준을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것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구현할 방법이 있을 때 기술적 가능성이다. 둘째, 어떤 것은 자연법칙과 양립할 수 있을 때 물리적 가능성이다. 내연기관 이전의 자동차는 물리적 가능성에 그쳤지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적 가능성이 되었다. 기술적 가능성은 물리적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누구도 물리 법칙을 어기는 장치를 만들 수 없다. 예를 들어 빛보다 빠른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어떤 것은 논리 법칙과 양립할 수 있을 때 논리적 가능성이다. 예컨대 어떤 것도 A이면서 A가 아닐 수는 없다는 무모순율을 어길 수 없다. 물리적 가능성은 논리적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일어난다.

철학자들이 시간이동에 관해 철학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은 시간이동이 가능성들의 위계를 깨뜨리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시간이동이 겉보기에 많은 논리적 불가능성을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시간이동 논의에 철학자들이 참견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시간이동이 실제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시간이동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볼 것도 없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시간이동의 기술적이거나 물리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논리적 가능성이다. 시간여행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시간이동의 논리적 가능성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은 '할아버지 역설'로 알려진 유명한 시간이동 역설을 근거로 든다. 삶에 환멸을 느끼던 영수는 과거로 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할아버지를 원망하면서 그를 살해하고 싶어한다. 영수는 할아버지가 결혼하기 전에 소년이었던 과거로 돌아가 그를 죽인다. 영수의 살해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수의 살해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모순되게 한다. 동일한 과거에서 할아버지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이에 따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결혼하면서 결혼하지 않으며, 영수는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동일한 과거에 모순된 사태들이 공존할 수 있는가? 이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이동의 논리적 가능성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은 시간이동이 꼭 모순된 사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모순된 사태는 영수가 할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다. 옹호자들은 영수가 할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태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철학자는 영수가 매우 하찮은 이유로 살해를 저지당한다고 본다. 영수가 권총을 격발하는 순간 불발되거나, 영수가 걸어나가는 순간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질 수 있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이로써 촉발된 잇따른 모순된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영수의 시간이동은 논리적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이 대응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영수가 살해를 저지당했어도 그 살해를 반드시 막는 원인이 있는 건 아니다. 영수의 권총은 반드시 불발일 필요가 없었으며, 영수의 길목에 바나나 껍질이 꼭 놓여 있어야 했던 것도 아니다. 영수의 살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살해되면 이에 따라 할아버지를 살해할 영수도 없어지기 때문에 영수는 할아버지를 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살해 가능성에 관한 모순이 일어난다. 영수는 할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으면서 살해할 수 없다.

시간이동은 단순한 공상을 넘어 우리의 삶과 세계의 많은 측면을 고민하게 해준다. 시간이동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세계의 시공간적 구조와 인과관계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 감정의 합리성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과거로 돌아가 시험에서 4번을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지금 나의 후회는 헛되고 불합리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내 후회는 정당할 수 있다.

▶▶ 한충만 선생님은…

△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상상국어모의고사 출제위원△대원여고 인문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