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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교양·진학 인문

지식과 앎에도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원인과 이유를 모르는 앎은
정당성 없는 불완전한 지식

앎을 토대로 행동하는 인간
삶의 계획 개선해 나가려면
정당한 지식 습득 노력해야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2000년도 훨씬 지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인류 역사는 지식을 통해 풍요로워졌다. 게다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앎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앎을 위한 공적 기관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앎을 전수해왔다.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대한 앎을 추구하려는 본성이 없었다면 지식 발전과 지식 문화는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무엇 무엇을 안다'는 말을 쉽게 쓰고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도 철학자들은 아직도 앎에 대한 개념을 정의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학자들은 어디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철학자는 우리가 보통 안다고 말하는 명제인 '2+2=4' '지구는 태양을 공전한다' 등이 앎이 될 만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해왔다. 첫째, 그 명제는 참이어야 한다. 2+2=8이라는 걸 안다는 건 이상해 보인다. 둘째, 명제를 아는 사람은 그 명제를 믿어야 한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명제는 그 명제를 아는 사람에게 정당화되어야 한다.

왜 앎에 정당화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로또 복권을 산 수진이는 '5, 22, 42, 39, 8, 17'이 당첨 번호라고 간절히 확신하면서 복권을 추첨한다. 수진이가 산 복권은 실제로 추첨일에 1등으로 당첨된다. 수진이는 5, 22, 42, 39, 8, 17이 당첨 번호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건 참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수진이는 그걸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진이는 그냥 운이 좋을 뿐이었다. 왜 그런가? 그게 당첨 번호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은 알지만 이유나 원인을 모를 때 우리에게 앎이 없다고 하면서 정당화 요소를 부각한다. 앎에 관한 질문은 무엇보다도 이 정당화 요소의 본성에 관한 질문이다.

언뜻 보기에 정당화 질문에 답하기는 쉬운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어떤 명제에 대해 "왜?"라고 물었을 때 답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별해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수현이가 빵을 훔쳐먹은 게 틀림없어"라고 말할 때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수현이 옷 주머니에서 빵봉지가 있었어'지 '수현이가 오늘 수학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어'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다음주 수업시간 중 하루에 '깜짝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공지한다(수업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있다). 그런데 공지를 들은 호준이는 "선생님은 깜짝 시험을 내실 수 없을 겁니다. 만약 목요일까지 시험이 없었다면 시험을 볼 날짜는 금요일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저는 금요일에 시험을 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건 깜짝 시험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시험이 없습니다. 만약 화요일까지 시험이 없었다면 저는 금요일에 시험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시험을 볼 날은 수요일밖에 없다는 걸 아는데 그러면 그건 깜짝 시험이 아닐 겁니다. 그러면 수요일도 시험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요일에 저는 금요일과 수요일에 시험이 없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에 시험을 볼 날은 월요일밖에 없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월요일 시험도 깜짝 시험이 아닐 겁니다. 따라서 어느 날에도 선생님은 깜짝 시험을 내실 수 없습니다!"

독자들은 호준이의 결론이 터무니없다는 걸 바로 알아챈다. 아무도 호준이의 말을 믿고서 시험 준비를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호준의 논증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짚어내기는 쉽지 않다. 많은 철학자들은 금요일 시험이 깜짝 시험이 아니라는 전제가 참이 아니기 때문에 호준이의 앎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제는 호준이의 전체 정당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냐하면 금요일 시험이 깜짝 시험이 아닌 최초의 이유가 다른 날에 도미노처럼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요일 시험만 깜짝 시험이면 호준이의 앎은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어떤 철학자는 금요일 시험에 관한 호준이의 믿음이 호준이의 지식적 맹점이라고 주장한다. 목요일 저녁에, 호준이는 내일 깜짝 시험이 없다고 믿어야만 깜짝 시험을 치른다. 한편 호준이는 같은 때에, 내일 깜짝 시험이 있다고 믿어야만 깜짝 시험을 안 치른다. 호준이의 믿음들은 정확히 반대 상황을 정당화하고, 두 믿음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우월한 것이 없기 때문에 호준이는 깜짝 시험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추론을 세울 수 없다.

깜짝 시험의 역설은 철학자들이 '인식론'으로 부르는 철학의 핵심 영역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정당화에 관한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는 단지 사변적인 추론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 결정과 선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호준이처럼, 우리의 정당화가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와 우리 주변에 대한 앎을 통해서 우리 행동의 이유를 찾고 행동을 계획한다. 우리의 행동 계획이 더 나아지려면 보다 좋은 정당화가 필요할 것이다.

▶▶ 한충만 선생님은…

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상상국어모의고사 출제위원

대원여고 인문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