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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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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서스펜스의 힘

영화 `기생충`에선 주인공 기택 가족의 사기 행각이 탄로날 것인가를 두고 서스펜스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기생충`에선 주인공 기택 가족의 사기 행각이 탄로날 것인가를 두고 서스펜스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최근 국제 영화계에 우리나라 영화의 높은 수준을 각인한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단연 들어간다. 기생충은 저소득층인 김기택(송강호 분)의 가정이 부유층인 박동익(이선균 분)과 최연교(조여정 분) 가정에 부정직한 경로를 통해 얹혀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기생충은 서사와 인물의 치밀한 구성을 통해 계층 격차의 모순을 드러낸 작품으로 영화인에게 열렬한 호평을 받았다. 기생충에서 관객들은 기택의 가족이 벌이는 사기 행각이 국문광(이정은 분)에게 들키면서 서스펜스(suspense)를 느낀다.

서스펜스는 우리가 작품을 보며 흔히 '들었다 놨다 한다' '가슴 졸이게 한다'고 표현하는 감정이다. 이는 우리가 공포·스릴러·추리물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유령이 언제 출몰할지, 연쇄살인범이 재범에 성공할지, 폭탄이 폭발하기 전에 제거될지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서스펜스는 특히 서사(이야기)가 포함되는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장르에서 제공하려고 목표하는 감정들 중 하나다.

서스펜스는 정확히 어떤 감정일까? 표준적인 설명은 서스펜스가 공포, 희망, 불확실한 인지 상태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쁜 결과를 두려워하고 좋은 결과에 희망을 느끼며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에 관해 불확실할 때 서스펜스를 느낀다. 예를 들어 당신이 수학 시험에서 1등급과 2등급을 가르는 한 문제를 찍었다고 해보자. 심지어 이 등급에 당신이 지원한 대학의 당락이 결정된다고 해보자. 당신은 찍은 문제를 틀렸을 때 벌어지는 나쁜 결과를 두려워하고, 맞혔을 때 나타나는 좋은 결과를 희망한다. 하지만 당신은 답안지를 받기 전까지 어느 결과가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 요컨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해관계의 크기가 서스펜스 크기를 결정한다.

 


표준 설명은 작품 감상에 다음처럼 적용될 수 있다. 당신이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본다고 하자. 당신은 스파이더맨이 악당 벌처에게 성공적으로 맞설 수 있는지 지켜본다. 당신은 스파이더맨의 성공에 실제로 걸려 있는 이해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스파이더맨과 동일시하거나 스파이더맨 편에 서서 상상의 이해관계에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스파이더맨의 성공이 불확실할수록, 스파이더맨에게 강하게 이입할수록 서스펜스를 더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스파이더맨과 벌처가 결국 어떻게 될지 알고서 영화를 본다면 당신은 서스펜스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표준 설명에서 불확실성은 서스펜스의 핵심이다.

하지만 서스펜스에는 불확실성이 꼭 필요한가? 얼핏 보기에 불확실성이 없어도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경우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명작은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보게 한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우리나라 '천만 영화'가 성공하는 데는 관객들의 'N차 관람'이 많이 기여한다. 우리는 재관람을 할 때 이미 작품의 결말을 알고 있지만 서스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공포 영화를 재관람할 때 우리는 유령이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서스펜스를 느낀다. 불확실성이 서스펜스의 필수 요소라면, 작품의 결말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는 채로 재관람할 때 서스펜스는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이를 '서스펜스의 역설'이라고 한다.

서스펜스 역설의 여러 해법이 있다. 첫째, 서스펜스가 요구하는 불확실성은 현실이 아니라 상상의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감상할 때 결말이 불확실하다고 상상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 우리는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둘째, 서스펜스에 필요한 것은 불확실성이 아니라 결말에 영향을 미치려는 우리 욕구의 좌절이다. 이야기는 허구이고 우리는 작가가 아닌 이상 허구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셋째, 불확실성은 서스펜스에 필요하지만 우리는 재관람할 때 이야기의 결과를 망각하기 때문에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이야기에 휘말려 있는 동안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넷째, 우리가 재관람할 때 느끼는 감정은 서스펜스가 아니고, 기대나 긴장을 서스펜스로 오인할 뿐이다. 정리해보면 역설의 해법은 서스펜스 개념을 달리 이해하거나 반복 감상에서 오는 서스펜스 현상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스펜스에서 불확실성의 포함 여부가 논쟁적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의 결말이 불확실한 많은 경우에 서스펜스를 느낀다. 게다가 서스펜스는 공포, 희망, 기대, 긴장 등 수많은 감정으로 이뤄진 복잡한 감정으로 보인다. 서스펜스가 썩 긍정적인 종류의 감정이 아닌데도 작가들은 서스펜스를 중요하게 다루고 우리도 작품에서 서스펜스를 찾는다. 이는 아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으로 점철된 우리 모습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작품의 서스펜스는 단지 허구가 아니고, 우리는 작품의 서스펜스를 통해 우리 모습의 거울상을 본다. 서스펜스가 예술의 가치에 기여하는 중요한 감정임이 틀림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