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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모래 몇알이 쌓여야 더미 될까? 말뜻의 역설

현대철학은 여러 철학적 문제
말뜻 살펴보면 풀린다고 생각

모호한 표현 잘못된 결론 만들어

실생활에서도 모호한 개념에
선 그어야 하는 상황 자주 생겨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엄마, 꽃은 왜 꽃이야?" 우리는 어릴 때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물어서 부모님을 당황하게 했던 꼬마 철학자들이었다. 보통의 부모님들은 이런 질문을 쓸데없다고 치부하거나 대답할 말을 못 찾아서 얼버무릴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부모님이라면 이 질문을 던진 아이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아이는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종류의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은 왜 꽃이야?"를 물을 때 아이는 무엇을 궁금해하는 걸까. 첫째, 아마도 아이는 아무 꽃 한 송이나 가리키면서 "이건 왜 꽃이야?"를 묻는다. 이 질문은 이 특정한 사물이 왜 꽃 범주에 속하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이것이 꽃이라면 가져야 할 특성들을 갖고 있는지를 통해 대답되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질문을 형이상학적이라고 한다. 이 질문은 있는 것들이 어떤 범주로 분류되고 그 범주들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둘째, 아마도 아이는 왜 꽃들이 '차'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꽃'으로 불리는지를 묻고 있을 수 있다. 이는 왜 '꽃'이라는 단어가 하필 이 꽃들을 뜻하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무엇을 근거로 '꽃'이 우리가 아는 그 사물들을 지시하는지를 밝히면서 대답되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질문을 의미론적이라고 한다. 즉 이것은 우리의 언어 표현의 무엇을 뜻하고 그걸 왜 뜻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현대철학을 연 사람들은 두 번째 질문을 묻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철학적 문제들이 그 말뜻을 잘 살펴보면 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말뜻에 대한 연구인 의미론은 그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철학자들은 언어 표현들이 의미되는 방식에 따라 대체로 지시 표현과 술어 표현으로 나뉜다고 본다. '세종대왕' 같은 표현은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을 지시한다.

한편 '사람' 같은 일반적인 표현들은 각 사물이 아니라 사람인 것들의 모음에 대응한다. 이 모음은 술어의 외연으로 불린다. 따라서 우리는 "세종대왕은 사람이다"에서 '세종대왕'이 지시하는 한 인물은 표현 '사람'의 외연에 포함된다"로 이해할 수 있다.

의미론적 설명이 간단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표현은 두 가지 이상의 것을 뜻한다. '배'에 교통수단과 과일의 뜻이 모두 있는 동음이의어 사례가 대표적이다. 철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애매하다고 한다. 이것의 의미는 그것을 사용하는 맥락을 따지면 정확하게 하나로 결정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표현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가령 '볼'이 가리키는 것의 경계를 펜으로 그어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걸 정확히 그려내지 못한다. 철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모호하다고 한다. 이 표현의 의미는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까.

모호한 표현의 의미를 굳이 결정할 필요는 또 뭔가. 어쨌거나 '볼'이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우리가 뜻하는 바를 잘 알고, 그 말을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철학자들은 고대부터 모호한 표현이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고 이를 해결하느라 아직도 애쓰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라. 모래 한 알은 모래더미가 아니다. 모래 한 알이 더미가 아니면 거기에 한 알을 더한 모래 두 알도 모래더미가 아니다. 그렇게 세 알도, 네 알도… 모래더미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n개의 모래알들이 모래더미가 아니면 n+1개의 모래알들도 더미가 아니다. 모래알이 아무리 추가되어도 그것은 모래더미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1조개의 모래알들도 모래더미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1조개의 모래알은 분명히 더미를 이루지 않을 것인가. 이는 더미의 역설로 불린다. 우리는 옳은 전제로부터 표현 '모래더미' 의미에 관한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역설은 '모래더미'가 뜻하는 바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같다. n개의 모래알까지는 더미를 이루지 않고 n+1개의 모래알부터는 더미를 이루는, 그런 분명한 경계선 n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역설은 풀릴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들은 그런 경계선이 실제로 있고, 단지 우리가 그 경계선이 어디에 그어지는지를 모를 뿐이라고 주장한다. '모래더미'는 모호하지 않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모래더미' 의미를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 게다가 모호한 표현은 우리 어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예컨대 '파란색') 그들이 맞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의 대부분의 의미를 모른다는 무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모호한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가. 모호함 현상은 우리가 언어 표현으로 세계를 가리킨다는 기본 착상에 대한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한라산'을 생각해보라. 당신은 한라산 주변의 흙과 바위와 생물들의 구성 원자들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한라산의 경계를 설정할 수 있는가. 한 사물에 한 경계만 있다면 한라산은 여러 개의 경계가 그어지는 여러 개의 산인가. 이런 흔한 표현도 모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표현의 지시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게다가 모호함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모호한 개념에 어떤 선을 그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기 때문이다. 가령 당신은 치명적인 전염병의 백신 치사율을 몇 %까지 감내하고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당신은 치사율 0.01%와 0.011%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할까. 또 임신중절은 보통 태아가 사람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전까지 허용된다고 한다. 태아는 언제부터 인격인가. 당신은 임신 5개월1시간1분1초와 5개월1시간1분2초 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백신의 안전성'과 '태아의 인격성' 말뜻의 문제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말 뜻을 넘어선다. 언어 너머의 바로 그 세계에 사는 당신에게는 선을 그을 좋은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 한충만 선생님은…

△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상상국어모의고사 출제위원 △대원여고 인문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