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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3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외로움 달래준 반려 '물건'…추모글 남겨 영원히 추억

일찌감치 가족 떠나보낸 미망인
27년 동안 바느질로 생계 이어와

소중히 간직해온 바늘 부러지자
애끊는 마음 `조침문`으로 남겨
한 많은 여인의 생애 담긴 명문

"네 비록 물건이나 다음 생에 다시 만나
백년고락을 함께하기를 바라노라"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필자는 네 살짜리 아이가 있는 집에 방문했다. 아이의 부모와 오랜만에 만난 터라 거실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방에서 자고 있던, 그 네 살배기가 깨어나 눈을 부비며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필자를 보고 통곡 비슷한 울음을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필자가 앉아 있는 방석 위 담요를 보고 울었다. 무심한 어른이 깔고 앉은 담요는 그 아이의 애착 물건이었다. 자신의 애착 담요가 짓눌려 뭉개지는 장면을 본 아이는 서러워 한참을 울었다.

어린아이들은 흔히 애착 물건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되며 애착 물건에 대한 집착은 점점 흐려지지만 어른이라고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망가지거나 없어졌을 때 슬픔은 어린아이 못지않다. 어른 체면으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지 못할 뿐 마음을 쏟던 귀한 물건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어른이나 아이가 매한가지다.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유씨 부인'의 경우도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을 잃고 그 슬픔을 달래려 '조문(弔文)'을 썼다. 조문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을 기리며 생전의 일화를 곁들여 쓰는 글이다. 유씨 부인이 잃은 물건은 '바늘'인데 그녀는 바늘을 잃고서 사람을 잃은 듯 슬픔에 잠겼고, 그 마음을 달래려 바늘에 대한 조문인 '조침문(弔針文)'을 남겼다.

 

 

유세차(維歲次)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조침문(弔針文)'의 서두이다. '유세차 모년 모일에'는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일에'라는 뜻으로 모든 조문의 첫 문장으로 쓰이는 관습적인 문구이다. 이 글에서 기리는 대상이 사람은 아니지만, 이 글은 '조문'이라는 것을 서두에 확실히 못박아 두고 있다. 작가가 바늘을 잃고 얻은 슬픔이 사람을 잃은 슬픔에 못지않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는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서두에 작가가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미망인은 남편을 잃은 여인을 가리킨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于今)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중략)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시름을 잊고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통재라.



작가가 바늘과 함께한 시간은 27년이다. 다른 바늘들을 무수히 부러뜨리는 동안, 딱 하나는 소중히 간직했는데 그것을 부러뜨렸다고 한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다'며 자신의 모든 감정을 꺼내어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자녀도 없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바느질에 마음을 붙였다고 한다. 작가는 미망인, 즉 남편을 잃은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빨리 낳았던 조선시대에, 아이를 갖기도 전에 남편을 잃은 것이다. 작가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바느질을 일삼아 생계를 꾸려야했던 고달픈 삶을 견뎠을 것이다. 어쩌면 이 여인의 슬픔은, 힘든 삶을 함께한 동료를 잃은 슬픔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년 동거하렸더니,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바늘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는 부분이다.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함께였다고 한다. 이 여인의 가정사를 알고 나니, 이 대목의 의미가 크게 와 닿는다. 본래 잠자고 밥 먹는 일은 바늘이 아닌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일찍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외로움을 달랠 길 없어 바늘과 함께한 모양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남편을 잃은 후 새 가정을 꾸리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시대 여성에게 미망인이 된다는 것은, 남은 삶을 살아갈 방법이 한 가지로 정해진 것과 같다. 다시는 남편과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삶에는, 당연하게도 그리움과 외로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글을 읽을수록, 바늘에 대한 애도보다 작가의 서글픈 생애에 대한 애도로 마음이 옮아간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통재라.



조침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바늘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그때는 헤어짐 없이 평생을 함께하자고 한다. 바늘에만 건네는 말일까. 먼저 떠난 남편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고, 자신의 서러운 생애를 안타까워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 재주 많은 여인은 안타깝게도 남편이 부재한 자리에서, 한평생을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갔을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시대를 건너온 이 글을 통해, 여인의 슬픈 삶에 공감하기도 하고 바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솜씨에 감동하기도 한다.

 

*영결(永訣):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헤어짐.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

*흉완(凶頑): 흉악하고 모짊.

*침선(針線): 바늘과 실, 바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