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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문득 떠나고 싶을 때…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온다

고려가요 `청산별곡`

삶의 괴로움과 좌절·절망서
벗어나고 싶은 심경 느껴져

선조들, 술로 마음 씻어내고
광대 공연으로 위안 얻길 희망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이가 '청산'에 살고 싶다고 한다. 같은 말을 거듭 되풀이하는 것을 보니 꽤나 간절한 것 같다. 이 노래 가사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서두를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누구든 일상을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대부분 삶에 단단히 싫증이 났을 때 생긴다. 아마 노랫말 속 화자도 자신의 삶에 싫증이 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청산일까. 구체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아니라 그냥 청산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은 지금의 삶이 꽤나 힘든 것 같다. 어느 곳 하나를 콕 집어 말하지 않고 무조건 청산으로 떠나고 싶다고 하는 것에서 여기만 아니면 좋다는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조용한 곳으로 떠나 소박하게 살고 싶은 순간들이 왜 없었겠는가.

노래가 이어질수록 이 사람의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노래 부르는 이는 삶이 단순히 지겨워진 게 아니라 삶을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은 지금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이 괴로움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마음이 마구잡이로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한번쯤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노래 속 화자는 그 시기를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순간에는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괴로움과 연결된다. 화자는 그저 지저귀는 새를 보았을 뿐인데 그것을 슬픔과 연결한다. 새를 보고, 너보다 고민 걱정 많은 자신도 자고 일어나 운다고 말을 건넨다. 이 사람이 겪어내는 마음의 괴로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정도로 괴로운 순간에는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마다 늘 사람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이럭저럭 지내왔지만 밤 시간은 어찌 보낼지 걱정하고 있다. 밤에는 더욱 곁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마음이 까마득한데 세상이 검게 물든 밤은 누군가의 위로 없이 버티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화자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그 원인을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화자는 돌을 맞았다. 돌덩이만큼 무겁고 묵직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돌이 원래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혹은 나에게 잘못 던져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가 던졌는지조차 모른다.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히 모를 때 우리는 더 심란한 법이다. 그래서 화자는 따져 묻는다. 도대체 이 돌은 누가 던진 것인지, 누구를 맞히던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답해줄 이는 없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마음껏 누구를 미워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화자는 상처만 가득 끌어안고 울고 있다.

괴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노래 속 화자는 우선 '에정지'에 간다고 한다. 에정지는 '외딴 부엌'을 가리키는 고려 때 말이라 추측하는데 그 정확한 뜻에는 아직도 여러 의견이 있다. 아무튼 화자는 에정지라는 곳에 가다가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갑자기 사슴이 왜 사슴일까. 사슴이 악기를 연주하는, 있을 수 없는 일어나는 기적을 바란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옛날에 사슴 탈을 쓰고 공연했던 산대놀이의 한 장면을 본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이 사람이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어떻게든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는 기적을 바라거나 흥겨운 광대들의 공연을 보면서 괴로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지금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독한 술은 늘 괴로움의 친구이다. 화자는 술을 빚어놓고, 술누룩이 자신을 붙잡는다고 말한다. 술을 간절하게 붙잡는 쪽은 당연히 화자일 테지만, 술에 기대지 않고서는 겪어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괜히 너스레를 떤다. 술이 나를 붙잡으니 그것을 마시지 않고 어찌하겠느냐고 너스레를 떠는데 이 모습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화자가 삶의 나락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조금씩 치유하고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문득 삶이 비애와 고독으로 가득 차버린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낸다. 옛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청산별곡'을 통해 고려를 살았던 선조들이 마음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기적을 바라거나 흥겨운 광대의 공연에 마음을 기댔다. 혹은 독한 술에 자신의 마음을 씻어내기도 한 모양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작품은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어 우리가 힘든 순간에 처했을 때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