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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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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끈질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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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 왕'(기원전 425년께)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으로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소설과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한 사건이 한 장소에서 하루 동안 이루어지는 삼일치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촘촘한 인과관계를 통해 각각의 장면이 다음에 올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잘 짜인 구조의 작품이다.

극은 테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도시를 휩쓴 전염병을 해결하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전염병은 선왕 라이오스의 살인자 때문에 신들이 내린 벌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지혜를 청하지만, 그는 당신이 찾고 있는 살인자는 오이디푸스 당신 자신이라고 답한다.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처남인 크레온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끌어내리고자 거짓을 말한다고 믿고 크레온을 향해 격노한다.

크레온과 오이디푸스의 다툼에 이오카스테가 등장하고 오이디푸스는 상황을 설명한다. 이오카스테는 예전 라이오스 왕의 아내였다. 라이오스가 죽은 후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에 평화를 가져온 공으로 왕으로 추대되고, 왕비였던 이오카스테와 혼인했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에게 신탁이 내려진 적이 있다는 말을 한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 생긴 자식에 의해 라이오스가 죽음의 운명을 맞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라이오스는 강도들에 의해 삼거리에서 변을 당했다. 또한 그들의 자식은 신탁이 두려웠던 라이오스에 의해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두 발목이 묶여 버려졌다.

 

사진설명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는 걱정스러운 듯이 라이오스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오카스테에게 묻는다. 그 대답에 불안을 느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받은 신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며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 수치스러운 일이 이뤄지지 않도록 그는 아버지의 땅 코린토스를 떠났다. 그 길에 삼거리에서 사륜마차를 탄 일행과 마주쳤고 오이디푸스는 강제로 자신을 길에서 몰아내려 한 그들을 실랑이 끝에 죽인다. 그들 중 하나가 라이오스가 아닐까 두려워진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마지막을 전해준 하인을 불러오라고 요청한다.

한편 코린토스의 사자가 찾아온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폴뤼보스 왕이 죽었다는 전갈이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예언이 틀렸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나머지 예언을 두려워하는 오이디푸스를 위해 사자는 폴뤼보스가 그의 생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자식이 없던 폴뤼보스에게 그가 계곡에서 발견한 아이였던 오이디푸스를 드렸다는 거였다. 두 발이 꼬챙이에 꿰뚫려 있는 아이를 자신이 구해냈고 직접 주운 것은 아니고 라이오스의 사람이라는 자에게 넘겨받았다고 했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에게 라이오스의 마지막을 묻기 위해 부른 하인이 사자가 얘기하는 그 자인지 묻는다. 이오카스테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괴로워하며 제발 더 이상 추적하지 말라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인이 도착하자 사자는 그를 알아보고 바로 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자와 오이디푸스의 추궁에 하인은 주저하다가 마침내 그때의 아이,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아들임을 확인해준다.

이미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가 스스로 목을 맸다. 죽어 있는 이오카스테를 본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옷에 있던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눈알을 찌르고 울부짖는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절망적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절차대로 행하고, 오이디푸스는 아이들과 함께 떠나겠다고 간청하지만 홀로 추방된다.

테바이를 구하기 위해 라이오스를 살해한 자를 찾는 행위는 결국 오이디푸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아아, 현명함이 득이 안 될 곳에서 현명하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라는 테이레시아스의 말처럼 차라리 오이디푸스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신이 부여한 운명을 피하고자 하면서도 진실을 좇는 인간의 투쟁으로 보아야 할까?

'오이디푸스 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하나의 주제는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비밀을 정작 오이디푸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해 발생하는 극적 아이러니에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밑줄! 이 문장

아아, 현명함이 득이 안 될 곳에서 현명하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스토리를 따라가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그 비밀을 정작 오이디푸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해 발생하는 극적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