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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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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만 정답일까 … 카프카에게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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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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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질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일상 속에서 허점을 드러내는 구멍과 문득 마주치는 순간이다.

카프카(1883~1924)의 매우 짧은 단편소설 '법 앞에서'(1915)를 읽어보자.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고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법 안에 들어가기를 청한다. 문지기는 그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고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럴 수도 있다는 여지만 남긴다.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고, 그 틈 사이를 힐끔거리며 문지기가 들여보내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는 시력도 청력도 잃어가는 노인이 된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문지기에게 꼭 궁금했던 질문, 왜 여러 해 동안 나 말고는 아무도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었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냉소적인 대답. 그거야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까. 임무가 끝났으니 나는 이제 문을 닫고 가겠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입구라면서 문지기는 왜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문지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이 세상에 편입되는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인지하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사회적 이름을 얻어 자리매김한다. 인간은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완벽하다고 설정된 타인에 의해 소외되고 부정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존재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스스로 욕망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피할 수 없고 그 간극을 메꾸는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던 삶에 균열이 일어나고 탁 튕겨 나가는 순간이 등장하는데, 그 과정을 포착한 것이 카프카의 중편소설 '변신'(19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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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평범하다면 평범한 직장인 그레고르는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출근이라는 임무가 더 시급한 과제다.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할 수도 문을 열 수도 없었다. 그를 깨우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리고 집을 찾아온 회사 지배인의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모두가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단호하게 돌아서는 지배인, 무서울 정도로 화가 난 아버지, 너무 놀라 돌아섰다 이내 그를 측은하게 여겨 먹을 것을 챙겨주는 누이동생, 놀라 울부짖으며 실신한 병약한 어머니…. 순식간에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믿음직한 가장에서 모두의 골칫거리로 변해버린다.

그는 가족의 경제적 안위를 걱정하지만, 가족들은 생각보다 훨씬 능숙하게 달라진 상황에 적응해간다. 그리고 그의 존재를 숨긴 채 방 하나를 하숙인에게 세 주기로 한다.

가족은 하숙인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누이동생은 모처럼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준다. 그레고르는 음악소리에 매료되어 금기였던 거실 바닥으로 나간다. 평화로웠던 순간 괴물 같은 그의 존재가 하숙인들에게 발각된다. 하숙인들은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즉각 방을 비우겠다고 선언한다. 누이동생은 이 벌레는 더 이상 오빠가 아니라며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그를 가둔다. 어둠 속에 갇힌 그레고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이야기 '변신'은 '환상'을 다루는 소설이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세상의 법칙이 달라, 자신의 꿈과 가족이 부여한 역할이 달라 혼란스러워하는 이로 바라보면 그 어떤 소설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간결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잊게 하며, 인물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법 앞에서' 뒷부분을 상상해보자. 주인공은 버럭 화를 내며 문지기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이 나쁜 놈, 넌 네가 마치 어떤 커다란 비밀을 향한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듯이 행세하는구나. 그 문 뒤에 비밀이라곤 없고 이 문은 오직 나를 위해서 오직 내 욕망을 잡아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 말이야." 그러자 문지기가 그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그것 보쇼, 이제 당신이 진짜 비밀을 알아내지 않았소. 문 뒤엔 오직 당신의 욕망이 끌어들인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는 현실의 시스템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이고, 어떤 상태처럼 보이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지기도 세상의 질서라는 게임의 일부였으며, 그가 들어올 수 없게, 그러면서 안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한 줄기 빛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 문지기의 존재 이유였다. 동경을 가질 만한 그 어떤 숭고한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소설 속 아니 현실 속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