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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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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하늘을 우러러 고민한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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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서 태어난 윤동주
현실·소명 사이에서 고민
'서시'라는 작품으로 표현
선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
조선 시조의 주요 테마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시 중 하나인 윤동주의 '서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 고뇌하던 작가의 괴로움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부끄러움에 자책한다. 자신의 도덕적인 지향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책 섞인 고민을 이어 가다가 결국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도덕적 소명을 찾고자 다짐한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찾아, 어렵고 괴로워도 그 길을 걷고자 다짐하는 것이다.

작가는 잎새에 일렁이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일종의 도덕적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하필이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에서 태어났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우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자책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은, 행동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가시가 되어 늘 괴로웠을 것이다.

작가는 결국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하늘'은 언제나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인간은 하늘을 속일 수 없다. 화자는 가장 도덕적인 지향을 '하늘'로 정하고 거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윤동주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고 독립 전에 옥사(獄死)했기 때문에 한 번도 조선이나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적이 없다. 그의 전 생애를 걸쳐 그의 조국은 제대로 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를 우리 조국을 위해 가장 처절하게 고민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삶을 살아가기란 이토록 어렵다. 개인적 안위와 소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민스러운 일들이 자주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에게도 이런 일은 예외가 아니었다. 도덕성을 저버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과 어렵고 괴롭더라도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두 갈래의 길이 우리를 끝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내가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여도 의(義) 아니면 좇지 말리

우리는 천성(天性)을 지키어 생긴 대로 하리라


조선 세종 때 변계량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조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간결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다. '논어'에 나오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종장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천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천성이라는 한자어는 하늘이 주신 인간의 타고난 성품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타고난 인간의 성품은 선하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괴롭고 흔들리는 순간에는 타고난 대로 행동하라고 한다. 선한 행동이 인간의 본래 성질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성현(聖賢)의 가신 길이 만고(萬古)에 한가지라
은(隱)커나 현(見)커나 도(道)가 어찌 다르리
한가지 길이오 다르지 않으니 아무 덴들 어떠리

 

조선시대 권호문의 연시조 '한거십팔곡' 중 17번째 노랫말이다. 인간의 천성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우리가 늘 선한 길을 가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삶은 매우 복잡하고 녹록지 않기 때문에 고민과 갈등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럴 때 우리 선조들은 성현(聖賢)이 가던 길을 따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현들의 길은 한 가지라고 한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모두 한 가지이며 사실 우리는 모두 그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길을 알고 있지만 지키기 어려울 뿐이다. 스스로 깨우치기 어려울 때는 외부의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권호문 작가는 자신의 마음속 도덕을 찾기 어려운 순간에는,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청하는 것이다.

슬프나 즐거우나 옳다 하나 그르다 하나
내 몸의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밖의 여남은 일이야 분별할 줄 있으랴

조선시대 윤선도의 연시조 '견회요' 중 1수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노래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라고 한다. 우리가 가야 할 옳은 길은 사실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묵묵하게 걸어가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길에는 수많은 유혹과 갈등이 따른다. 작가는 우리에게 길 밖의 일은 분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즉 옳은 일이 아니면 상관하지 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라고 한다. 단순한 가르침이지만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 수 없는데 그냥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모두 내면에 타고난 도덕성이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의 본성을 따라 가면 그 길이 선한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인간은 도덕과 부도덕 사이에 서서 끝없이 고민하고 자책한다. 우리 선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일제강점기부터 먼 과거인 조선시대에도 많은 작가들은 내면의 갈등을 겪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문학으로 남겨 놓았다. 그 덕에 우리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인 지향점이 흔들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