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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4일 월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아이 탄생 점지하는 제주의 여신, 삼승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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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종 모양의 산방산은 자식을 낳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명소이다.

 

사람들은 늘 초월적 존재나 힘을 믿는다. 우리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종교와 신을 믿는다. 이토록 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생명의 탄생과 죽음 같은, 인간을 둘러싼 근본적이고 신비로운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늘 초월적 존재의 힘을 믿는다.

고전문학의 '서사무가'라는 갈래에는 '본풀이'로 끝나는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의 연원이나 내력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떤 존재나 현상의 근본을 풀어낸다는 의미에서 '~본풀이'라고 제목을 붙이곤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연히 종교적인 성격을 지녀 무속신앙에서 부르는 '무가(巫歌)'로 이어져왔다.

인간에게 일어가는 가장 근본적이고 신비로운 일은 '탄생'과 '죽음'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탄생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서사무가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서사무가에서 '삼신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이다. 삼신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는 크게 내륙지방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인 '당금애기' 이야기와 제주지역에서 전해오는 '삼승할망' 이야기로 나뉜다. 두 이야기는 서로 내용이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제주에서 전해지는 삼승할망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삼승할망 이야기는 내륙지역의 삼신할머니 이야기와는 달리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승할망'과 더불어 저승을 관장한다는 '저승할망' 이야기가 제시돼 있다.

서사무가는 워낙 여러 무당들에게서 구전(口傳)되고, 구연자에 따라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동해 용궁에서 태어난 딸은 어렸을 때 죄를 지어 인간 세상으로 쫓겨난다. 그의 부모는 딸에게 인간 세상에 가서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을 돕는 삼승할망이 되라고 한다. 인간 세상에 온 동해 용왕 딸은 부모의 말대로 아이를 원하는 임박사 부부에게 아이를 점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점지할 줄만 알았고 출산하는 방법은 미처 몰랐다. 아이를 점지하고 열 달 후 막무가내로 아이를 꺼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출산 시기를 훨씬 넘긴 아이와 산모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인간 세상에 아기를 낳게 해 줄 삼승할망이 없으니 임박사가 원통하고 절통하여 내는 소리입니다." / "과연 그렇구나. 인간 세상에 사람 자취가 뜸하여 낮도 고요하고 밤도 고요했구나."
옥황상제는 여러 신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아이를 점지하고 순산하도록 돌봐 줄 삼승할망이 될 만한 이가 있는지 물었다.
"인간 세상에 있을 듯하옵니다. 명진국에 한 아가씨가 있는데 부모에게 효도하고, 일가친척 화목하고,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 여러 사람들이 건너다니게 하니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 손에는 번성꽃, 다른 한 손에는 환생꽃을 들고 있다고 하니 이 아가씨를 삼승할망이 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임박사가 아이를 출산하지 못해 원통함에 울고 있는데 그 소리를 옥황상제가 듣게 된다. 동해 용궁 딸의 존재를 모르는 옥황상제는 다른 이를 삼승할망으로 삼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기존 동해 용왕 딸은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때마침 동해 용궁 따님애기가 돌아와서 보니 죽은 목숨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와 아이 어미가 살아있더라. 곁에 앉은 처녀가 아이를 낳게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동해 용궁 따님애기로 인간 세상에 삼승할망으로 왔는데 너는 누구갸?"/ 명진국 따님애기는 조용히 나와 차분히 말을 했다. / "나는 명진국 따님애기로 옥황상제의 본부를 받아 인간 세상에 삼승할망으로 왔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해 용궁 따님애기는 명진국 따님애기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 "네가 대체 무엇이기에 아이를 낳게 했느냐! 내가 점지했거늘, 네가 뭐라고 아이를 낳게 해! 네 고약한 버릇을 고쳐주마!"

 

드디어 갈등이 터져버렸다. 자신의 역할을 빼앗겼다고 여긴 동해 용궁 딸은 새로운 삼승할망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명진국 따님애기에게 화를 낸다. 둘은 결국 옥황상제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옥황상제는 둘 중 하나를 삼승할망으로 정하기 위해 둘에게 과제를 내린다.

자초지종을 들은 옥황상제는 "얼굴만 봐서는 어느 누가 낫다고 할 수 없겠구나."/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둘에게 꽃씨 두 개를 주었다. "서천서역국 고운 모래밭에 꽃씨를 심어 꽃이 피는 걸 봐서 삼승할망을 정하겠노라." (중략) "동해 용궁 따님애기의 꽃은 시들었으니 저승할망이 되고, 명진국 따님애기의 꽃은 무성하게 자랐으니 삼승할망이 되어라. 저승할망은 저승으로 가서 죽은 아이들을 보살피되 아이들이 배고프면 울게 하고, 밤이나 낮이나 울게 하며, 경풍 청풍을 불어넣어 열다섯 살 아래 아이들을 서천꽃밭으로 데리고 가거라. 삼승할망은 이승에 머물러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고 집집마다 자손이 번성하게 하여라.


옥황상제는 결국 명진국 따님애기를 삼승할망으로 정했다. 꽃을 피우는 과제를 훨씬 잘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해 용궁 딸은 분한 마음에 못된 마음을 먹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 나이에 병들게 하여 저승으로 데려가겠다고 명진국 따님애기에게 엄포를 놓으며 겁을 준다. 하지만 선한 명진국 따님애기가 이런 동해 용궁 딸을 달래고 마음을 풀라고 한다. 결국 동해 용궁 딸도 화를 풀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리고 결론은 명진국 따님애기가 새로운 삼승할망이 되어 사람들의 임신과 출산을 돕고, 동해 용왕 딸은 저승할망이 되어 저승에 온 아이들을 보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의학이 지금보다 덜 발달했던 과거에 임신과 출산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 위험하고 힘든 과정을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돕는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 과정을 신이 도울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야 했다. 아마 제주에서 어린아이를 떠나보낸 부모들은 저승할망이 저승의 아이를 돌봐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노력이나 기술로 해결할 수 없고, 설명되지도 않는 다양한 일들이 펼쳐진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일들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몸과 마음을 달래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