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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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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울진 산불…관동별곡 아름다움 사라질뻔

조선시대 선조들의 명승지
망양정·경포대·낙산사 등
8개 뽑아 관동팔경이라 지칭
3월 동해안 산불로 피해입어

울진은 1960년대 이전까지
강원도 일부로 분류되던 곳
우리 문화재 지키기 힘써야

 

경북 울진과 강원 강릉·동해·삼척 등에 기록적인 피해를 남긴 동해안 산불 발생 한 달이 지난 3일 오전 강원 동해시 일원의 산림에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진설명경북 울진과 강원 강릉·동해·삼척 등에 기록적인 피해를 남긴 동해안 산불 발생 한 달이 지난 3일 오전 강원 동해시 일원의 산림에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직 2022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올 한 해 벌써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봄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 시점에도 올해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면 제법 굵직한 것이 여러 개 떠오른다. 전 세계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들만 해도 벌써부터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울진 산불'이다.

올해 3월 초 울진에서 산불이 났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여러 날이 지나도 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울진 산불이 더 위험했던 이유는 불길이 번져 나간 곳에 금강송(金剛松) 군락지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강송 군락지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는 수령이 500년을 넘겼고, 이곳 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150년 정도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은 허락 없이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는 왕명이 내려졌다. 울진 지역에는 노송이 자리한 금강송 군락지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유적이나 명승지들이 가득하다. 사실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울진 산불 소식을 듣고, 정철의 '관동별곡'이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관동별곡은 조선의 문인 정철이 관동 지역 관찰자로 부임하고 그곳 명승지들을 돌아보며 쓴 가사다. '관동(關東)'은 강원도의 별칭이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관동 지역 명승지를 8개 뽑아 '관동팔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유려한 자연환경을 가진 보석 같은 곳이 가득하다.

 


관동별곡에는 울진을 포함해 다양한 관동 지역 명승지들이 묘사되어 있다. 작품은 다양한 명승지들의 풍광을 그리고 있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몇몇 곳을 선정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낙산사(洛山寺)와 의상대(義相臺)를 묘사한 내용을 현대어로 변역한 부분이다. 화자는 배꽃이 지는 늦봄, 일출을 보려고 의상대에 올랐다. 의상대는 낙산사 옆에 자리 잡은 정자다. 화자는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 일찍 집을 나선 모양이다. 새벽부터 고생한 덕으로 해돋이의 장관을 보게 된다.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태양이 뜨고 있고, 그 주위로 구름이 양 옆에서 보좌하고 있다. 구름의 모습이 마치 여섯 마리의 용과 같이 보인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온 세상을 흔들며 솟아나고, 바다 위 태양빛은 머리카락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밝다는 것이다. 동해안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의 광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다음은 경포대다. 경포호와 경포해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다.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은 소나무들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화자는 철쭉꽃이 피어 있는 곳을 따라 경포로 내려갔다고 한다. 물결은 마치 흰 비단을 다려놓은 듯 보이고 큰 소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물결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잔잔하면서도 광활한 자연 풍광에 누구나 감탄하게 될 것 같다.

드디어 울진의 '망양정(望洋亭)'이다. 화자는 울진에 있는 망양정이라는 정자에 올라 바다를 보고 있다. 화자는 파도가 뒤척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성난 고래를 떠올렸다. 요동치는 파도를 보고, 누가 성난 고래를 놀라게 했길래 고래가 이렇게 물을 뿜으며 어지럽게 구는 것이냐 묻는 것이다.

정철의 눈을 통해 본 이 지역은 이토록 아름답다. 그런데 예리한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울진은 지금 경상도에 속한 지역이다. 그런데 왜 관동별곡, 즉 강원도 지역의 기행가사에 울진의 이야기가 있을까. 사실 울진이 경상도로 편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이 지역은 행정구역상 강원도였다.

사실 이 지역이 지금 행정구역상 어디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일대가 조선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인정한 소중한 명승지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부려 썼다고 평가받는 정철은 관동 지역을 돌아보며 이렇게나 자세히 이곳의 아름다움을 글로 남겼다. 사대부 계층은 한문을 쓰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에 한글로 글을 남겨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묘사하는 장소들은 현대의 독자들도 지금 직접 가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그래서 이 글은 더 소중하다. 우리는 이 작품을 매개로 조선을 살았던 선조와 같은 공간에 대한 아름다움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산불로 피해를 입은 울진 지역도 당시에는 강원도에 속했기 때문에 관동별곡에서도 놓치지 않고 담아 놓았다. 이 지역의 자연은 조선 시대부터 인정받아온 우리나라의 보석 같은 명승지다. 훗날의 후손들도 고전문학에서만 그 자취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이 문화재들을 잘 지키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