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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4일 월요일

교양·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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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한 말이 전하는 말 … ˝은혜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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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원(洪宇遠)의 '노마설(老馬說)'

안타깝구나, 말아. 너의 나이도 이제 많아졌고 힘도 쇠하여졌구나. 장차 너를 빨리 달리게 한즉 네가 달릴 수 없음을 알며, 장차 너를 뛰게 한즉 네가 그럴 수 없음을 안다. 내가 너에게 수레를 메워 매우 멀고 험한 길을 넘게 한즉 너는 넘어질 것이며, 내가 너에게 무거운 짐을 싣고 풀이 우거진 먼 길을 건너게 하면 너는 곧 죽을 것이다. 말이여, 장차 너를 어디에 쓰겠느냐? 너를 백정에게 주어 뼈와 살을 바르게 할까? 나는 너에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장차 너를 성 안의 저잣거리에 가서 팔더라도 사람들이 너에게서 무엇을 얻겠느냐? 안타깝다 말아. 나는 이제 너의 재갈을 벗기고 굴레를 풀어놓아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을 너에게 맡길 것이니, 가거라. 나는 너에게서 취하여 쓸 것이 없구나.



어떤 이가 말(馬)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노마(老馬)이고,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인 홍우원(洪宇遠)이 쓴 '노마설(老馬說)'로 고전수필 중 하나다.

이 글에 등장하는 말은 늙어서 기력이 쇠했다. 그래서인지 주인이 참 매정하다. 말이 젊고 튼튼했을 때는 무거운 짐도 자주 실었고, 험한 길도 달리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늙어서 힘이 없으니 처치 곤란이라 한다. 키우던 사람의 양심으로 백정에게 맡길 수도 없고, 시장에 내다 팔아도 아무도 사지 않을 거라 한다. 그러니 알아서 떠나라는 것이다. 마지막 말은 꽤 날카롭다. 이제 '너에게서 취하여 쓸 것이 없다'고 한다.



글을 읽는 독자는 마음이 서운해지며, 동정심이 들기 시작한다. 아무리 가축이지만 생명을 대하는 주인의 매정함이 너무하다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말은 말(語)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은 '문학'이다. 문학 작품에서 말이 할 법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말의 마음을 추정해 글을 이어가고 있다.



주인은 가난하였는데 (중략) 광주리에는 한 자의 피륙도 저장함이 없었다. 마누라는 야위어 굶주림에 울고 여러 아이들은 밥을 찾으나, 아침에는 된죽 저녁에는 묽은 죽을 구걸하듯 빌어서 끼니를 이어갔다. 그 당시에 나는 진실로 힘을 다하여 동서로 오가고, 오직 주인의 목숨만을 생각하며 남북으로 오갔으니, 오직 주인의 목숨을 위해 멀리는 몇천 리 가까이는 몇십 몇백 리를 짐을 싣고 달리며 짐을 싣고 뛰며 옮기기에 일찍이 감히 하루라도 편히 살지 못했으니, 나의 수고로움은 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집의 여러 식구의 목숨이 나로 인해 완전할 수 있었으며, 나로 말미암아 길 위에서 굶어 죽은 시체로 도랑에 빠지지 않게 되지 않았는가.



매정한 주인에 대한 말의 반박이다. 과거의 일을 언급하며 주인의 차가움을 꼬집고 있다. 가난한 주인 식구들은 말 덕분에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말은 험한 일을 하며 주인 식구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공적만을 늘어놓으면 자칫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꼴이 된다. 이성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매정한 주인이 '원래 말이라는 가축의 역할이 그것이다'는 날 선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말의 입장에서 주인의 마음을 돌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거두는 것이 '주인'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염치와 양심, 도덕 같은 것을 가진다는 것이다. 말은 자신을 버리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언급한다. 자신을 거두는 것이 '주인'이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는 길이고, 주인을 위하는 일이라고 해야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좋은 말들도 올바르지 않은 도리로써 채찍질해대고 그 재량을 다할 수 있도록 먹여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보통의 말만도 못하게 될 것인데, 하물며 전혀 기기나 화류에 미치지 못하는 나와 같이 노둔한 재주를 가진 말이야 말해 무엇하겠소. 그러므로 나의 기력이 지치고 나의 힘이 쇠하여 쓸모가 없게 된 것이 주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중략) 대저 젊었을 때 그의 기력을 다 부려먹고 나서 늙었다고 하여 내버리는 짓은 실로 어진 사람이나 군자라면 하지 않는 법인데, 주인께서는 차마 그렇게 하시려드니, 아, 역시 너무도 어질지 못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의 항변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기력이 쇠한 것은 늙었다고 홀대한 주인의 잘못이라 꼬집는다. 그리고 젊었을 때 부려먹고, 늙으니 내버리는 것은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주인의 인격이 어질지 못하다고 공격하는 것이다. 항변이나 조언이 아니라 훈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자칫하면 구걸이 될 수 있는 말을, 꾸짖는 말로 마무리하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로다. 말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옛날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관자(管子)가 늙은 말을 풀어놓고 따라가기를 청했으니, 관자만이 오직 늙은 말을 버리지 않고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능히 그 임금을 도와 천하를 제패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늙은 말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논리로 이길 수 없음을 느꼈는지, 주인은 자신의 뜻을 접는다. 뜻을 접는 것뿐만 아니라 '반성'의 기미까지 보인다. 말의 이야기가 정말 훈계의 역할을 한 것이다. 다시 상기하자면 이 작품 속 말(馬)의 이야기는 작가가 상상한 내용이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을 통해 독자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가축에게도 사람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 거리를 오갈 때, 당연하게도 자동차나 기차를 탄다. 하지만 선조들은 말(馬)을 타고 다녔다. 동서를 막론하고 말은 과거에 사람들의 이동과 물자의 운반을 도왔다. 또 말은 강하고 힘이 세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 도움을 받았으면 갚을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작가는 문학 작품을 통해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를 언급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교훈은 과거 시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현대 인류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동물, 자연, 환경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 도움 없이 인간은 살아가기 힘들다. 우리는 고전문학을 통해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전현선 의정부공업고등학교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