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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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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목숨 앗아간 역병의 고통…詩로 남아 위로 전해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섬 `소록도`.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위치했던 섬으로 유명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을 품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사진설명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섬 `소록도`.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위치했던 섬으로 유명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을 품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한하운 작가의 현대시 '파랑새'다. 시 속 화자의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화자는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길 원한다. 아마도 화자는 지금 자유롭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죽어서는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길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이 시의 작가인 한하운은 한센병, 소위 문둥병이라고 불리는 병을 앓았다. 이 병 환자들은 피부가 문드러지고 코의 연골이 무너지는 증상을 주로 앓았다. 과거에는 이 병의 치료법이 없었고, 사람들은 환자와 피부만 닿아도 병이 전염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멀리하고 두려워했다. 강제로 격리시켜 차별하기도 했다. 작가 한하운은 이 병을 앓았던 것이다.

작가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죽어서 파랑새가 되겠다'는 화자의 소망이 예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더러운 병에 걸렸다며 공격받던 작가의 심정을 더듬다 보면 독자에게도 슬픔이 몰려온다.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의 자유로움을 기약하는 화자의 고백에 독자의 마음은 아득해진다. 많은 날들을 서러움에 뒤척였을 작가의 심정을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인류는 늘 전염병 위험에 처해 있었다. 병으로 인한 고통은 늘 두렵다. 전염병이 가져오는 고통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우리는 다양한 고전 문학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후기 가사 '덴동어미 화전가' 일부이다. 이 작품에는 '덴동어미'라는 인물의 기구한 인생사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중 한 대목이다. 당시 괴질이라 불리는 '콜레라'가 조선을 덮쳤다. 병술년에 유행한 이 역병을 작품에서는 '병술년 괴질'이라 칭한다. 모두 병이 들어 며칠 만에 깨어나 보니 사람 삼십 명이 다 죽고, 살아남은 이가 몇 없었다고 한다. 이 병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덴동어미가 서방님의 시체를 붙들고 우는데, 서방님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일 것이다. 당시 이 병은 아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휩쓴 이 병은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조선 정약용의 한시 '파지리(波池吏)'의 앞부분을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당시 이 병은 마을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의 위력을 가졌던 것 같다. 제목 '파지리(波池吏)'는 '파지'라는 마을의 '아전'들을 의미한다. 작가는 아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전들은 병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돌보기는커녕 그들의 고통을 한층 더하게 한다. 병으로 인한 상처에 아전들의 횡포가 더해져, 사람들의 삶은 더 참혹해졌다.

서정주 작가의 현대시 '문둥이'다. 문둥병을 앓는 사람들이 밤에 나타나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괴담이 떠돌았던 것 같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기에 햇빛이나 하늘빛을 보지 못하는 문둥병 환자는 밤에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들의 늦은 밤길을 걱정하는 마음에 괴담을 만들었을 것이다. 환자들이 겪었을 고통의 무게가 짐작 가는 대목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은 과거부터 지속돼 왔다. 이 고통을 없애주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획기적인 치료법이나 예방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분야는 의학이나 과학기술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문학의 영역은 무엇일까. 과거 인류가 겪었던 비슷한 고통의 결을 느껴보며, 현재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거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전염병이 무서운 이유는 병 자체의 고통과 더불어, 감염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각종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조선의 정약용이 고발한 아전들의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고, 현대시에서 포착하고 있는 문둥병 환자들의 서러움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작품에 드러나는 병은 결국 극복되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의 어려움도 곧 인류에 의해 슬기롭게 극복되길 소망해본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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