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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조선 건국 칭송하며 부른 노래 '악장'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기념할 때, 노래를 부르곤 한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건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이었다. 어른들 중에는 아직도 그 올림픽을 '손에 손잡고'라는 노랫말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당시 올림픽을 기념하는 노래가 '손에 손잡고'라는 가사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노래'의 역할은 중요하다.
약 600년 전 이 땅에서도 아주 큰일이 벌어졌다.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노래를 지어 부르던 것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조선 초 사람들은 조선의 개국을 축하하고 번영을 기원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러한 노래를 고전문학에서는 '악장'이라 부른다. 악장은 넓은 의미에서는 궁중에서 행사를 위해 마련된 노래를 지칭하고, 좁은 의미로는 조선 초에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는 노래를 일컫는다.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이 지었다는 악장 '신도가(新都歌)'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새로운 도읍 '한양'을 기념하는 노래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이다. 조선의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고 꾸민 것도 정도전의 업적이다.
신도가에는 이러한 정도전의 자신감과 포부가 강하게 드러난다. 도읍지 한양에 대한 강한 긍정과 확신도 담겨 있다. 신도가는 새로운 나라와 새 도읍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가장 전형적인 조선 초 악장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조선 초 악장이 모두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신도가'와 꽤 다른 특징을 지닌 노래도 존재한다.
용비어천가 1, 2장의 현대어 풀이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노랫말로 125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긴 노래다. 이 노래는 이야기, 즉 '서사'의 요소가 강해 '악장'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하지만 조선 건국 내력을 밝히며 나라의 출발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악장으로 보는 견해가 흔하다.
이 노랫말은 신도가와는 꽤 다르다. 길이와 내용에서 모두 그렇다. 용비어천가는 '해동 육룡'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해동 육룡은 동쪽 바다의 여섯 용으로, 이들은 조선의 첫 왕인 이성계의 윗대 조상 6명을 가리킨다. 용비어천가는 이성계 윗대의 여섯 선왕의 일화들을 자세히 언급한다. 조선 건국은 태조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아주 당연하게 예정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용비어천가 후반부의 노랫말을 현대어로 풀이한 것이다. 작품 앞쪽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앞에서는 태조보다 앞선 조상들의 일화를 언급하며, 이 나라가 세워진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정당한 일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훈계와 조언에 해당하는 가르침의 말들이 이어진다. 이 가르침의 말은 조선을 이끌어 갈 후대 왕을 향한 것이다.
선왕이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싸움터에서 끼니를 거르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묻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선조의 공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태조의 옥체에 얼마나 많은 흉터가 있는지 아느냐고 묻고, 이 일을 잊지 말라고 한다. 나라가 안정돼 갈수록 후대 왕들은 좋은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한 생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배부르고 몸이 따뜻해도, 이 나라를 세우신 선조들의 어려움을 잊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용비어천가의 마지막 장인 125장에서도 후대 왕에 대한 경계는 그치지 않는다. '임금'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교훈은 '후대 왕'들을 저격하는 것임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핵심은 '할아버지만 믿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끝없이 노력해야 이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선 건국이라는 크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옛 선조들을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랫말들은 각자 저마다의 성격과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축하하고 기념하며, 새로 옮긴 수도를 칭찬하기도 하고 건국의 정당성을 밝히기도 했으며, 후대 왕에게 경고의 일침을 전하기도 했다. 우리는 '악장'이라는 갈래를 통해 역사의 격변기에 사람들이 가졌던 다양한 생각의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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