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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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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좋다˝... 한민족 유별한 국화 사랑 우리 선조가 아낀 `국화꽃`

[매경 DB]
사진설명[매경 DB]

예로부터 '국화'가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으로 우리 선조들은 이 꽃을 참 사랑했다.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삼아 그림으로 그려 옆에 두기도 하고, 고전시가의 소재로 삼아 노래로도 자주 불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시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국민 애송시이기도 하다. 이 시의 주인공은 '국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속 많은 것들은 국화를 향하고 있다. 새가 봄부터 우는 이유도,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우는 이유도 국화를 위해서다.

그런데 이 국화가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 한다. 국화가 누님을 닮았다는 것인데, 누님을 닮았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생겼다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누님은 다 다르게 생겼고, 우리는 화자의 누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도리가 없다. 누님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진행되는 이 비유는 한없이 낯설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비유를 두고 불평할 수 없다. 그건 문학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누님을 설명하는 단서를 찾아내, 누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밖에 없다. 누님은 가슴 졸이던 젊은 날을 지나 보내고 거울 앞에 서 있다. 무더운 여름날을 견뎌내고, 젊음을 저만치 흘려보낸 인물이다. 작은 일에는 쉽게 가슴 졸이지 않는, 한껏 무르익은 사람인 것이다.

이런 누님을 상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상대를 한없이 따뜻하게 맞아줄 것 같은 푸근함이 떠오른다. 또는 삶의 걸음마를 막 뗀 이들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기도 하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러한 높은 경지를 닮은 꽃이 국화라고 이야기한다. 여러 풍파를 견뎌낸 후에 갖게 되는 연륜과 인자함이 국화를 닮았다는 것이다.

국화에 대한 사랑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시조다. 봄이 오면 온 세상이 들썩이고 얌전하던 사람도 괜히 설레고 들뜨는 날들이 이어진다. 봄에는 꽃봉오리도 설레는 기운을 참지 못하고 피어난다. 하지만 국화는 다르다. 국화는 훈훈한 봄날을 조용히 지낸 후, 낙엽 떨어지는 추운 날 꽃망울을 터뜨린다. 우리 선조들은 국화의 이러한 모습을 참 좋아한 것이다. 다른 꽃들이 잎을 거두는 차가운 날씨에 피어나는 모습을 귀하게 여겼다.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내는 그 모습에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 같은 것들을 찾아낸 것이다.

조선시대 작가 송순(宋純)이 지은 시조를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노래에는 특별한 사연이 전해온다. 어느 날 임금이 옥당(玉堂), 즉 홍문관에 국화꽃을 주며 신하들에게 노래를 지으라고 명했는데, 이 노래는 임금의 이러한 명을 받고 지어졌다고 한다. 홍문관은 당시 문서와 서적을 관리하던 곳으로 왕의 자문 기관 역할을 했다.

작가 송순은 왕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노래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노래 속 화자는 괜히 복숭아꽃을 나무란다. 복숭아꽃은 봄에 잠깐 피고 지는 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숭아꽃이 바람과 서리를 맞고 피어나는 가을꽃의 깊은 뜻을 알 리 없다는 것이다. 임금은 아마도 추운 날을 견디고 꽃잎을 펴내는 국화의 굳건함을 신하들에게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그 뜻을 간파했다. 우리 옛 선조들은 이렇게 가을꽃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 것이다.

꽃의 종류는 수없이 많고, 그 꽃들이 가진 매력 또한 저마다 다르다. 다양한 꽃 중 우리 민족은 국화를 유별나게 아끼고 좋아했다. 국화는 가을에 피어나는 속성으로 인해 완숙함이나 굳건함의 의미를 지녔다. 우리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국화를 귀하게 여겼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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