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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교양·진학 인문

장발장 도와준 주교 거짓말,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어른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진실함'은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다. 그런데, 거짓말은 항상 나쁜 것일까.

도덕성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거짓'은 나쁘고 '진실'은 선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 규칙이 어른들의 세계에도 늘 적용될까. 어른의 세계는 어린아이의 세계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거짓말'은 나쁜 것일까.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

프랑스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은 '장발장'이다. 장발장은 배고픔을 못 이기고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 당시 프랑스 사회는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해도 계속 가난 속에 살아야 하는 모순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주교가 말했다.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깨에 배낭 하나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두 눈은 거칠고 피곤했고 표정은 난폭했다.

"내 이름은 장발장이오. 징역형을 산 죄수올시다. 감옥에서 열아홉 해를 보냈고. 나흘 전에 석방되어 지금 퐁타를리에로 가는 중이요. 오늘은 거의 12리를 걸었소. (중략) 돈은 여기 있소. 열아홉 해 동안 감옥에서 일해 번 돈이 19프랑 15수인데, 내 전 재산이오. 숙박비를 낼 테니 좀 먹여 주고 재워 주시오. 지금 너무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오."

미리엘 주교는 어느 날 갑자기 교회로 들이닥친 장발장의 사정을 듣고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내어준다. 돈을 받지 않고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런데 장발장은 교회의 은그릇을 훔쳐 새벽에 도망간다. 그릇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장발장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헌병에게 잡혀 결국 다시 교회로 끌려오게 된다.

미리엘 주교는 장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당신이로군! 다시 보게 되어 다행이오. 내가 당신에게 은촛대도 주지 않았소? 그것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은제품이니까 200프랑은 넉넉히 받을 수 있을 거요. 그런데 왜 그건 가져가지 않았소?"(중략)

"그렇다면 이 자를 그냥 보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헌병들이 장발장을 놓아 주자, 장발장은 뒷걸음질을 쳤다. 주교가 다시 말했다. "형제님, 가시기 전에 여기 있는 당신의 촛대를 갖고 가시오. 여기 있소." 주교는 벽난로로 가더니 두 개의 은촛대를 장발장에게 주었다.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 은제품들을 팔아서 마련한 돈은 반드시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겠다고 나와 약속한 사실을 말이오."

미리엘 주교는 거짓말을 했다. 성직자인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주교의 거짓말을 비난할 수 있을까. 주교가 법의 질서를 어긴 것은 사실이다. 더 냉정하게 따지자면, 주교는 '범죄자는 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우리는 주교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 그가 사실을 말하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을 감옥에서 지낸 장발장은 다시 기약 없는 옥살이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 고전문학에는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없을까. 프랑스 소설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와 굉장히 흡사한 성향의 인물이 우리 고전에도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모(茶母)'이다. '다모'는 조선시대 관아에서 차를 대접하는 잡일을 맡아 하던 여성 관리이다. 이들은 조선시대 양반층 여성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남자가 처리하기 곤란한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여성 전문 수사관'의 임무를 맡은 것이다.

'다모전'은 나라에 큰 기근이 든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술을 빚지 못하게 명을 내렸다. 술을 빚을 때 곡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속 다모는 어느 양반집에서 술을 빚는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나라에서 내린 명령이 어떠한데 양반 신분인 분이 이처럼 법을 어긴단 말입니까?"

할머니는 사죄하며 말했다. "우리 집 양반이 지병을 앓고 있는데, 술을 못 마시게 된 이후로 음식을 삼키지 못해 병이 더욱 고질이 됐네. 가을부터 겨울까지 며칠씩 밥도 못 짓고 살다가 며칠 전에 마침 쌀 몇 되를 어디서 얻어 왔어. 노인의 병을 구완할 생각으로 감히 법을 어겨 술을 빚고 말았지만, 어찌 잡힐 줄 생각이나 했겠나. 선한 마음을 가진 보살께서 제발 우리 사정을 불쌍히 보아 주시기 바랄 뿐이네. 이 은혜는 죽어서라도 꼭 갚겠네." 다모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항아리를 안고 가서 잿더미에 술을 쏟아 버렸다. 그러고는 사발을 하나 손에 들고 문 밖으로 나왔다. 아전은 다모를 보고 물었다. "어찌 됐느냐?" 다모는 웃으며 말했다. "술 담근 걸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송장이 나오게 생겼소." 다모는 곧장 죽 파는 가게로 가서 죽 한 그릇을 산 뒤 양반 댁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죽을 건네주었다.

다모는 손을 쳐들어 생원의 따귀를 때리더니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네가 양반이냐? 양반이란 자가 형수가 몰래 술을 담갔다고 고자질하고는 포상금을 받아먹으려 했단 말이냐?"

앞서 살펴 본 '레미제라블'과 굉장히 유사한 상황이다. 조금 다른 것은 주교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명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다모는 법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수사관이라는 것이다. 다모는 딱한 사정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모의 이러한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속 다모는 훗날 포상금을 노리고 할머니를 신고한 자를 꾸짖기도 한다.

생원은 법의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다모를 이해하지 못하며 법의 질서를 어지럽힌 다모를 공격한다. 독자들은 이 대목을 읽은 후 누구 편을 들어줄까.


우리는 프랑스와 조선시대 고전 소설을 읽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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