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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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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거타지·왕수재…활 잘 쏘는 영웅이 설화속에

무용총 수렵도
사진설명무용총 수렵도

주몽은 고구려를 세운 왕으로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몽의 이미지는 그의 손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주몽은 활을 잘 쏘는 명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원래 주몽 이라는 단어가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만큼 주몽왕은 명궁수였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 고전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은 주몽 말고도 많다. 활 잘 쏘는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 고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패(良貝)는 진성여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진도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 쏘는 사람 50명을 선발하여 같이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에 닿으니 풍랑이 크게 일어났으므로 열흘 이상이나 묵게 되었다. 양패공(良貝公)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 이 일을 점치게 했다.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그곳에 제사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못 위에서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 남짓이나 높이 치솟았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공에게 말했다.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은 꿈을 깨어 그 일을 좌우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구를 남겨 두면 좋겠는가?" 여러 사람들이 대답했다. "나뭇조각 50쪽에 저희 궁수들 이름을 각각 써서 물속에 가라앉게 함으로써 제비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공은 그 말에 따랐다. 궁수 중에 거타지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그를 남겨 두니 순풍이 문득 일어나 배는 지체 없이 잘 갔다.

 

삼국유사에 실린 거타지 설화다. 때는 신라 진성여왕 시절이고, 양패는 진성여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양패가 당나라로 가던 중 배가 곡도에 머무르게 된다. 양패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한 명을 섬 안에 남겨두고 떠나라 하고, 결국 거타지가 섬에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거타지로서는 참 당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거타지에게 이 일은 오히려 행운으로 다가온다. 홀로 남겨진 거타지에게 자신의 활 솜씨를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타지가 근심에 잠겨 섬에 서 있으니 갑자기 한 노인이 못 속으로부터 나와 말했다. "나는 서쪽 바다의 신이오. 매번 어떤 중이 해 뜰 때면 하늘에서 내려와 주문을 외우고 이 연못을 세 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에 뜨게 되는데, 중은 내 자손의 간장을 빼 먹곤 하오.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았소. 내일 아침에 또 반드시 올 것이니 그대는 중을 활로 쏘아 주시오." "활 쏘는 일은 저의 장기(長技)니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중략)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중은 즉시 늙은 여우가 되어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물속에서 나와 치사했다. "공의 덕택으로 생명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공에게 아내로 드리겠소." "저에게 따님을 주시고 저버리지 않으시니 원하던 바입니다."

노인은 그 딸을 한 송이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 주고 이내 두 용을 시켜 거타지를 받들고 사신의 배를 따라가서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 지경에 들어가게 했다. 당나라 사람은 신라의 배를 두 용이 받들고 있음을 보고 사실대로 황제에게 아뢰었다. 황제는 말했다. "신라의 사신은 정녕코 비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신하들의 윗자리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히 주었다. 고국에 돌아오자 거타지는 꽃가지를 내어 여자로 변하게 한 다음 함께 살았다.



홀로 섬에 남겨진 거타지는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 가족을 구한다. 그리고 노인은 거타지에게 자신의 딸을 맡긴다. 현대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긴 하다. 아무튼 거타지는 활 잘 쏘는 영웅이라는 이유로 아내를 얻는 행운을 가졌다. 이 설화의 이야기 구조는 훗날 소설에까지 전해진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아버지 '왕수재'를 주인공으로 한 고전소설에서도 거타지 설화와 유사한 이야기 구조가 보인다.

 

"수재가 만일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모셔 온 뜻이 없지 않겠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요. 내게는 늦게 본 딸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나이가 열여섯이지만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소. 수재가 내 말대로 요망한 여우를 활로 쏴 죽여 준다면 내 딸을 아내로 삼게 해 주겠소."



섬의 노인이 왕수재에게 부탁을 하는 장면이다. 거타지 설화와 유사하다. 섬에 있는 여우를 처리해 주면 자신의 딸을 주겠다는 것이다. 뒷부분 이야기가 자연스레 짐작이 간다. 수재는 여우를 물리치고 부인을 얻을 것이다.

수재는 정신을 하나로 모아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긴 채 여우 부인의 얼굴이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까마귀가 울며 보름달이 떠올랐다. 갑자기 활시위 소리가 나더니 화살이 유성처럼 날아가 여우 부인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여우는 한바탕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파도 위에 쓰러져 죽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늙은 여우였다. 어여쁘게 단장하고 분을 바른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새끼 여우로 변했다. 그러자 구름이 사라지고 바람이 그치며 천지가 환해졌고 파도도 멈추었다. 노인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와 수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중략) "내가 백 살 노인이긴 하나 어찌 감히 식언을 할 수 있겠소?" 그러고는 수재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딸에게 말했다. "이 수재는 내게 큰 은혜를 베풀어 준 분이시다. 너와 평생의 짝으로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간의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우리 민족은 참 활을 잘 쏜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올림픽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올여름도 마찬가지였다. 악조건 가운데 5년 만에 겨우 열린 올림픽에서 양궁 선수들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활을 잘 쏘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리적인 이유와 결합한 문화와 생활 방식 등 여러 곳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의 고전문학도 우리에게 답을 건넨다. 고전에 등장하는 궁수들의 자취를 찾다보면, 우리는 다시금 스스로가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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