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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교양·진학 인문

신라인 최치원을 띄워줘? 말아?…당나라의 고민

과거 당나라의 수도 시안. [매경 DB]
사진설명과거 당나라의 수도 시안. [매경 DB]

'기재(奇才)'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기재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아주 큰 칭찬이다. 그런데 만약 기재라고 칭할 만한 사람이 나와 적대적 관계라면 어떨까. 그 상황에서도 상대를 진심으로 칭찬할 수 있을까.

고전소설 '최치원전'의 일부다. 최치원은 신라시대 작가이자 정치가로,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기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소설 속 기재라는 칭찬도 최치원을 향한 것이다. 지금 중국에 해당하는 나라가 당시 당나라였는데, 당나라 황제가 아주 어려운 문제를 냈고 최지원이 그 문제를 풀어 답안으로 시를 지어 제출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있다. 만리절역, 즉 아주 먼 나라 신라에서 이토록 좋은 성과를 냈으니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말이 심상치 않다. 최치원이 뛰어난 재주를 지닌 것이 소국이 대국을 멸시할 단서가 될까 두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불러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이유를 묻자는 것이다.

이 구절은 최치원과 그의 가족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최치원을 중국으로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중국에 가면 반드시 큰 화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는 것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쯤 되면 당시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 궁금해진다. 확실한 것은 중국과 신라 간 관계가 평등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가 늘 순탄하지 않듯이, 국가 간 관계도 늘 평화롭지는 않다. 중세에는 특히 그랬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금 중국에 해당하는 당나라의 그늘에 있었다. 중세는 문명권 단위로 문화를 교류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심은 당나라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연스레 문명의 본토인 당나라를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형님의 나라로 모셨다. 이렇게 중국을 향한 사대주의가 지속되면서 중국은 스스로를 대국이라 칭하고 다른 국가들은 소국이라 칭했다. 자신이 문명권의 중심이자 본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신라라는 변두리 작은 나라에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 치면 한국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외국인인 것이다. 외국인이 뒤늦게 한국어를 배워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 외국인 작가를 향한 칭찬이 쏟아지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작가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외국인이니 그럴 줄 알았다는 무시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최치원을 비롯한 당시 신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외국인이라는 근본적인 열등감과 당나라 사람들의 은근한 무시를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니 신라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자존심은 어떻게든 회복해야 했다. 옛사람들이 자존심 회복을 위해 사용한 수단이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해 중국에 당한 무시와 설움을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허무맹랑한 소설은 자존심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신라도 중국에 못지않은 문화 강대국임을 내세워야 했다. 그때 선택된 인물이 최치원이다. 중국이 신라를 아무리 무시해도, 신라는 '최치원 보유국'인 것이다. 최치원이 당시 얼마나 훌륭한 문장과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치원전 후반부다. 중국에서 많은 선비가 모여 과거 시험을 보는데, 하늘의 용이 최치원이 쓴 글을 가져갔다. 황제가 최치원에게 다시 글을 써달라 부탁하고, 그 글을 본 황제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 과거 시험의 장원은 최치원이 차지했다. 실제로 역사 속 최치원은 당시 당나라로 가서 과거 시험을 보고 급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당나라에서 관리 생활을 했고, 그때 그가 남긴 글들은 중국 사람들에게 아주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최치원전을 읽으며 과거 신라인들이 사대주의로 무시를 당하면서도 소설을 통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를 무대로 명성을 얻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최치원전을 통해 옛 선조들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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