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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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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아이돌급 인기…'화랑'을 향한 선망의 노래

정창섭 `화랑도의 수련`
사진설명정창섭 `화랑도의 수련`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화랑(花郞)'이라는 단어는 꽤 익숙하다. 그리고 화랑이 어떤 조직이었는지도 대강 알고 있다. 최근에 화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워낙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화랑은 고대 신라에 존재하던 단체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청년과 청소년들로 이루어졌으며, 관리나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우두머리 화랑이 밑에 많은 낭도(郎徒)들을 거느리는 철저한 위계를 갖춘 조직이었고, 이들은 보통 무사로 활약하기 위해 훈련했다. 그들은 무예뿐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시도 짓는 등 여러 재주를 연마했다. 이런 이유로 화랑은 지덕체를 모두 갖춘 매력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화랑의 이야기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외모가 대부분 출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화랑의 선발 기준 중 하나가 준수한 외모였다는 속설이 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속설에 현대인의 상상력이 더해져,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화랑은 모두 꽃미남 배우들이 연기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꽃미남들이 모여 각종 재주를 익히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하다.

 

 

신라 향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대부분의 향가가 그러하듯, 이 작품도 워낙 오래된 노래이기 때문에 원래의 정확한 뜻을 알기 힘들다. 유명한 학자들이 현대어로 풀이한 번역이 존재하는데, 그 번역본들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인 뜻은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어서, 여기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흔히 소개되는 번역본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기파랑'이라는 화랑을 찬양하는 노래다. 노래는 먼저 '달'에서 시작한다. 하늘의 달이 흰 구름을 쫓아간다. 달이 흰 구름을 왜 쫓아서 따라가는지 모르겠지만, 흰 구름이 아주 중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노래 속 시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새파란 냇가를 바라보며 '기파랑'의 모습을 떠올린다. 기파랑이라는 화랑이 아주 존경스러웠던 것이 분명하다. 하늘의 흰 구름과 땅의 시냇가, 선명한 흰색과 파란색이 모두 기파랑을 찬양하고 있다. 제자들은 냇가의 조약돌을 보며, 그가 지녔던 마음을 조금이라고 닮아가려 한다.

노래의 마지막은 감탄으로 끝난다. 잣나무가 높아 서리나 시련을 모르는 화판이라고 언급한다. 화판은 화랑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우아하고 기품 있는 노래 한 편이다.

하늘의 구름과 땅의 시냇물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모든 자연물이 모두 기파랑을 흠모하는 듯 느껴진다. 화랑이 조직 안에서 그들의 우두머리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노래 역시 득오가 '죽지랑'이라는 화랑을 사모하는 마음에 지었다는 '모죽지랑가'이다. 그런데 앞선 찬기파랑가보다는 더 어둡고 우울하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지나간 봄'을 그리워한다. '봄날'은 이미 지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죽지랑의 주름살을 언급하며 예전 같지 않은 화랑의 모습을 언급하기도 한다. 결국 노래는 한탄과 아쉬움으로 마무리된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맘 편히 잘 밤이 없다고 말하며 노래를 끝난다.

이 노래는 삼국유사에 실렸는데, 관련된 이야기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득오는 죽지랑을 모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지랑이 사라졌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가 급하게 다른 지역에 임명되어 떠났다고 한다. 또한 죽지랑이 득오를 비롯한 낭도들을 불러 함께 길을 떠나려 했는데 나라에서 이를 허락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가, 득오가 죽지랑 덕분에 겨우 원하는 길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어도 화랑의 위엄과 지위가 많이 위축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화랑도의 세력이나 지위가 약해지는 시기에 부르던 노래로 추측된다. 이런 이유로 이 노래는 찬기파랑가보다는 훨씬 우울하고 어둡게 읽힌다. 기파랑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찬양하던 찬기파랑가는 그를 향한 존경심과 함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을 존경하는 마음이 크지만, 화랑의 몰락과 시대의 변화를 직감한 듯 다소 우울하다.

고대 신라에 존재했다는 '화랑'은 참 매력적이다. 외모가 출중한 젊은 남성들이 무예를 익히며 각종 재주를 익혔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노래를 통해서도 신비로운 존재인 화랑의 전성기와 쇠퇴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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