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등록 2022-08-23 11:14:32teen.mk.co.kr
2025년 03월 28일 금요일
목숨 내걸고…바른말 했던 조선 선비의 기개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등록 2022-08-23 11:14:32
소설은 허구적 이야기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역사 기록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소설 중에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가감 없이 그대로 담아내려는 작품도 있다. 고전소설 '박태보전'이 그런 소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박태보는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인현왕후 폐위 사건 당시 임금에게 직언하다 고문을 당하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박태보라는 인물이 겪은 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다. 허구를 더하지 않은 이 인물의 일화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감동이나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박태보전을 통해 이 인물에게 배울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조선시대 숙종 임금 시절이다. 숙종은 후궁 장씨의 계략에 넘어가 당시 중전인 인현왕후를 폐위하려 했다. 이에 많은 신하가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상소문을 올렸고 박태보도 그런 신하 중 한 명이었다. 조선시대 왕의 지위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바른말을 하더라도 왕의 위엄과 권위에 맞선다면 역모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상소문을 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위에 제시된 부분은 소설 속 박태보가 죄인으로 끌려가는 장면이다. 신하들의 상소문을 보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했다고 느낀 임금은 화를 내며 상소를 올린 신하들을 잡아 오라 명했다. '도사'는 조선시대 죄인을 다루던 의금부 관리를 말하고, '나장'은 죄인을 문초하거나 매질하는 사람을 칭한다. 지금으로 치면 형사들이 박태보의 집에 찾아와 끌고 가려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박태보는 당황하거나 숨으려 하지 않는다. 죄인이 되어 고문을 받고 심문받는 끔찍한 자리에 끌려가게 된 사람치고는 너무 당당하다. 자신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칼이라고 부르던 큰 형틀을 스스로 차고, 자신이 지니던 물건 일부를 어머니께 갖다드리라 하면서 편안하게 움직이다. 어쩌면 이때 박태보는 다시 살아서 어머니를 뵙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박태보는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다. 그렇기에 이 일로 화를 입더라도 혼자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동료들이 아무리 말려도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임을 거듭 말하고 있다. '원정'은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으로 죄인이 문초를 당할 때 자신의 죗값을 덜고자 하는 것이다. 동료들이 같이 의논하며 죄를 좀 줄여보려는데도 박태보는 끝까지 이를 거부하고 이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하겠다고 한다.
박태보는 궁지에 몰렸다. 옳은 말을 했더라도 임금을 향해 비난조의 직언을 한 사람은 죄를 면하기 힘들다. 임금은 이미 간신들의 말과 꼬임에 넘어가 합리적인 판단을 잃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진 듯 보이고, 박태보는 최대한 용서를 구하고 선처를 빌어 죄의 크기를 줄이는 길만이 남았다. 하지만 박태보는 끝까지 조목조목 임금의 잘못을 향해 화살을 던진다.
박태보는 이제 왕의 실수를 직접적으로 꼬집는다. '처와 첩을 둘 다 둔 가장'의 예를 들어 한쪽으로 치우쳐 가정의 도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왕 앞에서 퍼부을 수 있는 신하가 몇이나 될까. 박태보는 자신의 안위보다 할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아비가 어미를 내치면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고 되묻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왕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져 물은 대가로 박태보는 고문을 받아 귀양 가는 길에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가서야 숙종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킨다. 또한 박태보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위해 서원을 세우고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하기도 한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너무나 닮은 이 소설은 허구를 더하지 않은 박태보의 일화를 거의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조선시대 국가 사적과 자료를 보관하던 장서각이라는 기관에 소장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 글이 후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리라 여겼던 것 같다. 자신의 목숨보다 임금의 잘못을 따져 묻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여긴 선조의 삶을 돌아보며 현대의 독자들도 주관과 줏대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