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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변치않는 우직한 존재…'바위'가 지닌 가치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돌이나 바위가 지닌 한결같음의 가치를 인정한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정신을 차리기 힘든 순간이 많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결같음의 가치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돌이나 바위가 지닌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시간인 것 같다.
유치환 작가의 현대시 '바위' 전문이다. 이 시는 어려운 한자어가 많고, 그 한자어가 모두 무겁고 굵직한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시의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구절구절의 세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작품 전체를 휩싸고 있는 인물의 강하고 결연한 의지는 확실히 느껴진다. 화자는 아주 비장하고 강력하게 바위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시 속 화자는 죽어서 바위가 되겠다고 한다. 이 희망은 소망이나 다짐을 넘어 선언과도 같다. 아주 굳은 결심이다. 그 이유는 바위가 절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애련(愛憐)' '희로(喜怒)'와 같은 한자어는 모두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바위는 애련이나 희로와 같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과 기분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는 늘 한결같음을 유지한다. 화자는 바위의 이런 점에 매력을 느낀 모양이다.
이렇듯 보통 바위나 돌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의 상징이다. 사실 돌만큼 흔한 자연물도 없다. 길거리 혹은 산 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게 돌이고 돌멩이다. 그래서 돌은 때때로 가치 없고 흔한 것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돌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만큼 단단하고 한결같은 자연물은 흔하지 않다. 작가는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도 일찌감치 돌의 가치를 알아봤다.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五友歌)의 첫 수다. 오우가는 제목 그대로 다섯 친구를 소개한 노래다. 첫 수에서는 우선 다섯 친구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있다. 다섯 친구는 '수석' '송죽' '달'이다. 즉, 물과 바위,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달이 화자의 친구인 것이다. 그중 우리가 눈여겨볼 벗은 '석(石)', 즉 '바위'다. 바위를 소개한 오우가의 한 수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화자는 자신의 친구인 바위를 자랑하기 위해, '꽃'과 '풀'의 단점을 지적한다. 같은 자연물이지만 바위는 꽃이나 풀과 다르다. 꽃은 피고 나면 쉽게 진다. 풀도 푸름을 유지하다가 누렇게 시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위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 조선시대 윤선도 작가는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든든함을 바위에서 발견했다. 유치환의 현대시에 등장한 바위 이미지와 유사하다. 이렇게 돌이나 바위는 시대를 넘어서, 변함없는 한결같음을 상징한다. 지금도 돌은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다양한 문학 작품에 곧잘 등장한다.
마종기 작가의 '강원도의 돌' 중 일부다. 이 시의 화자도 돌이 지닌 변함없음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그 원인까지도 찾아냈다. 강원도의 돌은 매일 물속에서 물 흐르는 맑은 소리로 귀를 닦는다. 그 모습이 화자의 눈에는 참 예쁘다. 그리고 화자는 깨달았다. 매일같이 투명하고 맑은 물로 귀를 닦으니, 돌은 늘 한결같을 수 있는 것이다. 돌에는 세상의 어지러움과 세속의 때가 묻을 겨를이 없다. 늘 맑고 투명한 물소리를 들으며 귀를 닦아내기 때문이다.
화자는 세상이 가깝든 멀든 휘둘리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머무는 돌의 마음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돌 같은 눈'을 갖고 싶어한다. 물속에 누워 하늘과 구름을 보며, 한결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소망은 조선시대 윤선도 작가가 바위를 친구라고 소개한 마음과 유사하다. 조선의 윤선도가 바위가 너무 좋아 친구라고 소개했다면, 현대의 마종기 작가는 돌을 친구로 삼는 것에서 나아가, 그 속성을 조금이라도 담고 싶어하는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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