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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흐르는 강물에 뱉어내는 이별의 눈물·아쉬움·분노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주 유명했던 가요의 한 구절이다. 오래전 유행가인데, 아직도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노랫말 속 남녀는 이별하고 있다.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린다. 아마 두 쪽 다 이별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계속 함께하고 싶은 이 남녀는 '바다'를 핑계 삼아 아프게 헤어진다.
이별의 핑계가 왜 하필 '바다'일까. 이 의문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구절을 통해 해결된다. 남자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먼 길을 떠나는 상황인 것이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훌쩍 떠나 버린 곳에 '항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여자는 항구와 같이 그 자리에서 떠난 남자를 기다린다. 이별의 이유가 바다는 아니겠지만, 바다라도 핑곗거리로 삼아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이다.
옛 노랫말에서 '항구'였던 공간을 지금 시대에 맞게 고친다면 '공항' 정도가 어울린다. 옛 바닷가나 지금의 공항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기득하다.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슬픈 이별의 사연이 항구나 공항에는 쌓이고 또 쌓여 있다.
항구나 강가가 이별의 상징이 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물이나 강은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없어서 '단절'이나 '분리'의 의미를 지녔다. 강가나 바닷가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를 오가는 장소였기 때문에, 이 공간에는 수많은 이별의 사연들이 묻어 있다.
옛 사람들에게도 강가는 이별의 장소였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에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서글픈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 노래에서 물을 건넌다는 것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다.
노래를 부르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물을 건너지 않기를 간절히 애원하지만, 결국 임은 물을 건너고 둘은 헤어진다. '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을 가져오는 매개인 것이다.
고려시대 문인 '정지상'에게도 강가는 이별의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비 온 후 강가에는 싱그러운 풀빛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장면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이별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에서도 누군가는 헤어지는 것이다. 이별의 장면을 바라보다 작가는 문득 상념에 젖는다. 그리고는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강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서 이별하는 사람들이 강물에 눈물을 보태는 까닭일 것이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틀린 말이다. 하지만 노랫말 속에서는 충분히 맞는 말일 수 있다.
당시 이 강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경별곡'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고려시대 불렀던 노랫말 중 일부다.
이 노래 속 화자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또 강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마음이 힘들어지면, 누구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노랫말 속 화자가 화풀이로 삼은 대상은 '뱃사공'이다.
화자는 사공에게 왜 배를 강물에 띄우느냐고 퍼붓는다. 그리고 만나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사공의 아내까지 들먹이며 괜히 사공을 공격한다. 그만큼 이별이 싫은 것이다. 이별이 너무 힘든 나머지, 나와 그 사람을 떨어뜨리는 강물에 대한 미움을 사공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장소'나 '공간'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기분이나 정서가 있다. 강가나 바다는 과거 이별이나 헤어짐의 장소였다.
우리는 옛 노래에 등장하는 강과 바다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겪었을 이별과 슬픔을 조금은 헤아려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슬프다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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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