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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교양·진학 인문

부끄러움을 아는 자만이, 반성도 성찰도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은 또다른 기회
행동을 반추하게 만들고
성숙으로 나아가게 해줘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할 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감정을 느낀다. 행복, 슬픔, 분노, 기쁨, 부끄러움 등등. 수많은 감정에 휩싸여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온몸이 흔들린다. 사실 우리의 기억을 이루는 것도 대부분이 감정이다. 사람들은 보통 '참 행복했다' 혹은 '그때 참 슬펐다'와 같이 감정으로 과거를 추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은 희미해져도, 감정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매 순간 널뛰는 감정의 기복 속에서 어느 때는 잔잔하게, 어느 때는 폭풍같이 살아간다.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남긴 '열하일기'의 일부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중국을 다녀온 뒤 남긴 글인데, 중국에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의 구절은 연암이 중국에 막 도착해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부분이다.

연암은 중국에 도착해 기가 죽었다. 기가 죽어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생겼다. 중국 촌구석이 예상보다 너무 번화했기 때문이다. 집은 높고 길이 넓으며, 수레도 활발히 오간다. 거리에 내어놓은 그릇은 모두 그림을 그려넣은 도자기다. 조선의 촌구석과 비교하면 너무나 화려하다. 번화한 중국 시골 마을을 보며 연암은 기가 죽었다. 하지만 계속 풀 죽어 있지 않고 곧 반성을 시작한다.

연암은 자신이 왜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스스로에게서 한걸음 떨어져 분석한다. 그리고 '시기심'에서 벗어나 '반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시기와 부러움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반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 아직 중국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일부만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의 끝에는 늘 '반성'이나 '성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참 소중하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이나 성찰을 시작한다. 인간이 성숙하거나 발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김수영' 작가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일부다. 화자는 아주 신랄하게 자신을 비판하며 몰아세운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커져 화가 됐다.

화자는 주문한 갈비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식당 주인에게 욕을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정의로운 일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는다. 그런 자신에게 화를 낸다. 옹졸한 자신의 모습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스스로에 대해 자조적으로 비웃다가, 마지막 질문을 남기며 이야기를 끝낸다.

모래와 바람, 먼지와 풀에 묻는다. 대체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적으냐'고 묻는다. 이 구절을 읽는 독자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절대 모래나 먼지만큼 작지 않다!'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다.

결국 독자는 작품 속 화자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독자들에게 부끄러움과 반성의 기회를 주는 구절이다.

그렇다. 사실, 부끄러움은 기회다. 반성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며, 정체에서 벗어나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도 어쩌면 이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옛 사람의 글이든, 같은 시대 사람의 글이든, 글 속의 이야기는 대부분 자신의 삶과는 다른 타인의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글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하려는 의도다. 마치 조선 후기 연암이나 김수영 시의 화자처럼. 우리는 글을 읽고, 다양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얻어 성숙해나갈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