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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염라대왕도 못들어준 소원 '행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늘 변하고 있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그러나 쉼 없이. 우리는 매일매일을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면서도 늘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매 순간을 '살아 내고' 있지만 '사는 일'은 항상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사는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 일은 언제나 서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도 백발노인에게도 사는 일은 늘 정답 없는 질문이다.
10년 전쯤 사람들은 '웰빙족'이 삶의 정답이라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수많은 '종족'들이 생겼다가 사라진 것을 보면 '웰빙족'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었다. 최근 대세는 '욜로족'과 '로하스족'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욜로와 로하스를 대체할 새로운 이국적인 단어가 생겨났다가 또다시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어땠을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기를 원했을까. 조선 후기 한글 소설 중 작가를 알 수 없는 '삼사횡입황천기'가 있다. 이 소설을 보면 옛사람들이 원했던 삶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세 선비'가 저승에 다녀온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옛날에 세 선비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들이 산에 올라 꽃구경을 하다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다. 그런데 그 산에는 저승사자들이 있었다. 저승사자들은 죽은 사람들을 잡아 이승에서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하는데, 하필 그날따라 죽은 사람이 없었다. 저승사자들은 아무도 저승에 데려가지 못하면 염라대왕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하다 홧김에 술에 취한 세 선비들을 저승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들이 세 남자를 잘못 잡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들을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그러자 선비들은 욕심이 생겼다. 이승에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겠다고 하니 기왕이면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시켜 달라 청한다.
세 선비와 염라대왕의 대화다. '염왕'이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이다. 이 소설은 한자어와 어려운 단어가 많아 현대어로 쉽게 풀어서 제시한 것이다.
세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환생하길 원했을까. 우선 첫 번째 선비는 문과에 급제하여 아주 높은 관직에 오르기를 소망하고, 두 번째 선비는 무과에 급제해 암행어사가 되기를 원한다. 역시 조선은 '양반'의 나라였다. 두 선비는 양반이 되어 높은 관직에 오르길 원했다. 염라대왕은 이 두 사람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선비다. 결론부터 말하면 염라대왕은 세 번째 선비가 말한 소원을 듣고 화를 낸다. 너무 큰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은 '네가 원하는 게 가능하다면 내가 그렇게 살겠다'고 한다. 즉 나도 그렇게 못 사는데 너를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주겠냐고 화를 낸다. 대체 무엇을 요구한 것일까. 그 시절 높은 관직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욕심은 무엇일까.
세 번째 선비의 요구 사항이다. 우선 180세까지 살겠다고 하는 대목이 보인다. 인간 수명에는 한계가 있는데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다. 그렇다면 염라대왕이 화를 낸 이유가 너무 긴 수명을 원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사실 이 선비의 소원은 앞부분이 핵심이다.
그는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적당한 수의 자식을 낳고 싶다고 한다. 이 선비가 두려워하는 것은 '많은 자식'이 아니라 '걱정'이다.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항상 식구들과 화목하며 기쁘게 살기를 원한다. 부부 사이에도 즐거움이 가득하길 바란다. 요구의 핵심은 '화목한 가정에서 걱정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는 앞의 두 사람처럼 높은 관직과 명예를 바라지 않았다. 단지 걱정 없이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원했다. 염라대왕의 화를 돋운 지점도 이 부분이다. 늘 걱정 없이 행복한 삶. 이런 삶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행복'이다. '부와 명예'가 아니라 행복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질문과 같다. 높은 관직과 명예 정도는 염라대왕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화목한 가정과 행복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행복은 누가 준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행복도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느끼고 가지려고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높은 관직 그리고 관직에 따라올 부와 명예,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선망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다 가진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는 옛 소설을 통해 가장 어렵고 소중한 것은 행복임을 알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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