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mk.co.kr
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퇴계 이황은 왜 '한림별곡'을 비판했을까
퇴계 이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비다. 그가 머물며 공부했던 경북 안동은 지금도 '한국 선비문화의 고장'이라 불린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비이자 학자다. 이러한 이황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라는 시조를 짓고, 그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황이 '한림별곡'이라는 노래를 비판하고 있다. '글하는 사람' 즉 학자들이 부른 노래지만, 교만하고 방탕하며 무례하다고 지적한다. 이뿐 아니라 거칠고 희롱하며 업신여기기까지 한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한림별곡'이라는 노래가 어떻길래, 이렇게까지 폄하했을까.
한림별곡은 총 8장으로 이루어진 노래인데, 그중 1장을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노래의 작가는 '한림제유(翰林諸儒)' 즉 한림원이라는 관청에 속한 여러 선비들이다. 서두에는 무언가를 나열하고 있다. '유원순'이 쓴 문장, '이인로'가 쓴 시, '이공로'가 쓴 글인 '사륙변려문'을 언급하더니, 또 다시 많은 사람의 글과 시를 나열한다. 앞서 언급한 사람들은 글과 시를 잘 쓰기로 유명한 학자들이다. 그리고 화자는 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과거 시험장을 상상해보라 한다. 그 광경이 어떠하냐고 묻는다.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놀랍다' '감동스럽다'는 대답을 원하고 있다. 화자는 또 질문을 한다. 이러한 스승들을 모신 '제자들'이 나를 합해 대체 몇 명이냐고 묻고 있다. 역시 묻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의도는 자랑이다. 이 질문에는 자신의 지식과 학풍을 자랑하고 싶은 의도가 깊게 배어 있다. 이런 자랑과 자만을 이황은 '교만함'과 '허세'라 꼬집은 것이다.
한림별곡의 두 번째 장이다. 이번에는 각종 책과 문집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묻는다. 책의 주석까지 모두 외우는 그 광경이 어떠하냐고 묻는다. 400권이 넘는 그 책들을 두루 읽는 모습이 보기에 어떠냐고 묻고 있다. 이 역시 대단하다는 반응을 얻어내기 위한 자랑이다.
이들의 자만심과 당당함은 학문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한림별곡의 8장에는 이들의 자부심이 풍류의 영역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온 세상을 향해 자랑을 늘어놓은 이들에게, 자신 없는 분야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면 놀기도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이 선비들은 노는 것에도 자랑과 자만이 넘친다. 이들은 우리 같은 선남선녀들이 어울려 그네 타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냐고 물어본다. 역시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이 선비들은 대체 누구일까. 누구이길래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할까. 이들은 고려 말 등장한 신흥사대부 집단이라는 의견이 있다. 신흥사대부는 '신흥(新興)', 그야말로 새롭게 떠오른 정치 세력으로 이들의 무기는 '유학'이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학문인 유학, 즉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에 넘쳤다. 신흥 사대부들이 만든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이들은 500년 넘게 이어진 '고려'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만들었다. 이들은 유학의 가치에 따라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들 주장에 따라 '조선'이 세워졌다. 이들의 자부심은 아무도 넘볼 수 없었다. 새로이 나라를 열어 시작하는 사람들의 당당함을 누가 감히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조선 중기 학자인 이황은 이들의 넘치는 당당함과 자부심을 비틀어 본 것이다.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당당함을 허세라 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황도 유학을 공부한 학자라는 것이다. 물론 조선 중기 유학과 조선 초 신흥 사대부들의 학문이 온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황이 공부한 학문의 뿌리가 신흥 사대부들과 같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황은 자신의 선배들을 비꼬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세운, 자신의 직속 선배들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은 '유학'의 나라인데, 그 누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학을 도입한 신흥 사대부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이황과 같은 큰 스승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어리고 젊은 사람은 패기와 자신감으로 무장한다. 연륜에서 오는 '노련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함이다. 그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이런 젊은 사람들에게 어른들이 '겸손함이 없다' '너무 자만하다'고 나무란다. 그런데 이황의 경우 자신보다 훨씬 앞 시대의 선비들, 그것도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의 직속 선배들에게 이런 비판을 던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이름을 떨친 선인들은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황이 남길 글귀 속에서, 나이나 상하 관계를 막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확고함을 엿볼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