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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교양·진학 인문

'나이듦' 피할 수 없다면 즐겨버려라

사람이 '늙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조금씩 늙어간다. 노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조금씩 서글퍼지게 마련이다.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신계영의 시조 '탄로가'에는 늙음에 대한 한탄이 가득하다. 화자는 거울을 원수 취급한다. 거울이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내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좋을 리 없다.

아마도 우리가 늙는 것을 서러워하는 이유는,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젊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움이 어제인 듯하다'는 시조 속 고백은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다. 화자 마음은 여전히 젊은 날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야속한 거울은 '넌 이제 늙은이야'라고 말한다. 늙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보면, 젊은 날의 나를 찾을 수 없다. 서러움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거울 속 늙은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 늙은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슬픔에 빠진다.

 

우탁의 시조 '탄로가'에도 늙음을 한탄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신계영의 '탄로가'보다 덜 절망적이고, 덜 슬프다. 이 노래에서는 늙어가는 서러움을 대놓고 티내지 않는다. 대신 재치와 유머로 가볍게 넘긴다.

화자는 한 손에는 막대, 다른 한 손에는 가시를 움켜쥐고 적을 물리칠 준비를 한다. 그 적은 다름 아닌 '늙음'이다. 그런데 늙음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야속한 흰머리는 지름길로 나를 찾아온다. 염색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 화자는 이 흰머리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화자는 문득 봄바람을 떠올린다. 겨울 내내 쌓여 있던 흰 눈이 봄바람에 녹아버리는 장면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봄바람을 빌려다 내 머리 위에 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참 엉뚱한 상상이다. 겨울눈이 봄바람에 녹듯, 내 흰머리를 봄바람에 녹여 보려 하는 것이다. 누구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유쾌한 상상임에는 분명하다. 우탁의 '탄로가'에는 재치와 유머가 있다. 절망과 한탄 대신, 늙음과 맞서 싸우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엉뚱함과 짓궂음이 있다.

 

'백발가'라는 단가다. 단가는 판소리 공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다. 서두는 흰머리를 서러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늙음을 서러워하다가, 화자는 갑자기 뜬금없이 친구들에게 놀러 다니자고 한다. 세상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며,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놀러 다녀야 한다고 보챈다. 늙은이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부지런히 놀러 다니자는 것이다.

늙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렇게나 다양하다. 누군가는 한탄과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유쾌한 상상으로 늙음을 막아보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워할 겨를 없이 놀러 다니자고 친구들을 재촉한다. 젊은 시절이 끝나가 아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도 천차만별이다.

노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유쾌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늙음'이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어린아이와 같은 엉뚱함이나 발랄함을 앞에서는 주인을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물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아직 늙을 때가 아니라고 피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옛 고전시가를 통해 늙음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살피며, 어떻게 늙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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