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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교양·진학 인문

이별을 참는 것만이 여성적 어조라는 편견

 

진달래꽃 화자 누군지 알수없지만
여성이 어울린다며 여성으로 단정

고려 서경별곡·조선 방물가에선
이별 거부하는 여성의 모습 보여

이육사 詩는 기개넘쳐 `남성적`등
남녀의 성향을 단정짓는 건 위험



사람 성향과 성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여자는 대체로 이러하고 남자는 대체로 이러하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의 목소리를 '여성적'이라 정하고, 독립운동가 이육사 작가의 시에 등장하는 용감하고 기개 넘치는 목소리를 '남성적'이라 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대시 '진달래꽃' 일부다. 시 속 화자의 연인은 이별을 원하지만, 화자는 헤어지기 싫은 상황인 것 같다. 그런데 화자는 '떠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직접 꺼내지 않는다. 자기 본심을 힘겹게 돌려 이야기한다. 꽃을 따다 당신이 걷는 길에 뿌려 놓을 테니 떠나려면 그 꽃을 밟고 가라고 한다. 꽃을 짓밟는 것은 화자를 짓밟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떠나려면 나를 짓밟고 떠나라는 것이다. 속마음을 직접 꺼내 '날 떠나지 말라'고 하면 간단할 것을, 화자는 자기 본심을 돌려서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이 시를 배우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시의 작가는 김소월, 남자다. 그리고 이 작품 어디에도 화자의 성별을 알 수 있는 뚜렷한 단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의 화자를 으레 '여자'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를 '여성적 어조'라고 배운다. '여성의 어조'도 아니고 '여성적 어조'다. 이러한 말을 하는 주인공은 '여성'이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전통적 여성 어조'라 칭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정말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별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참고 감내했을까. 전통적인 여성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힘겹게 에둘러 이야기했을가.

고려시대 노래 '서경별곡' 일부다. 서경은 당시 수도인 '평양'을 지칭하는 말이다. 화자는 당시 수도인 평양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을 꽤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화자는 '평양'을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임이 평양을 떠나려 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괜히 뱃사공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화자는 뱃사공에게 왜 배를 띄우냐고 따져 묻고, 네 아내가 음란한 걸 모르냐며 괜한 시비를 건다. 아마 연인이 배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나려 하기 때문에 뱃사공이 미워진 모양이다.

이 노래 속 말하는 이는 '여성'이 확실하다. 고려시대에 '길쌈'을 하는 사람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임이 떠난다면 '길쌈하던 베를 자르고 임을 따라가겠다'는 구절을 통해 이 시의 화자가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여성은 이렇게 이별을 거부하며, 떠나는 연인을 적극적으로 붙잡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부르던 '방물가'라는 노래다. '방물'은 잡다한 물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노랫말의 처음은 여자가 하는 말이다. 서방님은 날 떠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서방님'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 속 말하는 사람이 여자임을 알 수 있다. 여자는 '날 데려 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다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네가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 네 소원을 다 말해라'라는 구절은 남자가 하는 말이다. 이 시의 대부분 분량은 남자가 여자를 달래기 위해 늘어놓는 '물건'에 대한 설명이고, 그래서 이 시 제목이 '방물가'다. 남자는 고대광실 좋은 집에 좋은 물건부터 온갖 의복 종류를 나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는 단호하다. '고대광실' 좋은 집도, '금의옥식' 좋은 옷과 음식도 다 싫으니, 날 데려가라고 말한다. 헤어질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이별을 맞이하는 여자들 태도는 다양하다. '서경별곡'과 '방물가'에 드러난 여성은 이별을 강하게 거부한다. '진달래꽃'의 화자와 아주 다른 모습이다. 현대시 '진달래꽃'의 화자를 두고 흔히 '전통적 여성의 어조'라 칭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이 진달래꽃의 화자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 고전문학을 통해 우리는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여자든 남자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사람들 성향과 모습은 제각각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옛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고전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