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등록 2022-08-23 11:14:06teen.mk.co.kr
2025년 03월 28일 금요일
떨어질 때를 아는 '낙화'의 아름다움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등록 2022-08-23 11:14:06
조지훈 작가의 현대시 '낙화'이다. 제목이 알려주는 대로 '지는 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꽃은 늘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우리는 가장 아름답거나 소중한 것을 언제나 '꽃'에 비유한다. 활짝 핀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이, 꽃은 활짝 핀 후에 곧 시들어 떨어지기 마련이다.
화자는 꽃이 지는 상황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도 '낙화'가 어쩔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바람'을 탓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꽃은 떨어질 때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또 화자는 밤이 되면 촛불을 꺼야 한다고 말한다. 꽃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지는 꽃잎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려는 마음일 것이다. 인위적인 촛불의 불빛보다 꽃의 아름다운 색을 더 선명하게 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화자는 자신의 속마음을 누가 알까 저어하다고 한다. '저어하다'는 것은 '두렵다'는 의미이다. 지는 꽃을 보고 속상해 하는, 자신의 여리고 고운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하는 것 같다. 아마 창피하고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화자는 속마음을 끝까지 애써 숨기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가서는 '울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는 꽃잎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속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 옛 선조들도 지는 꽃을 보고 아쉬워했다. 위의 시는 조선시대 이황이 남긴 한시를 번역한 것이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꽃은 '매화'이다. 매화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참 좋아한 꽃이다. 겨울에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와 억센 바람을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를 보고, 성리학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굽히지 않는 의지나 절개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이다. 조선시대 시가 중 '매화'와 관련된 작품이 유난히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화자는 매화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매화도 꽃이기에 자신의 철을 누리고, 결국 떨어진다. 화자는 매화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고, '절개'가 '사나운 비'를 만나 꺾이는 모습을 떠올린다. 아마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상상일 것이다. 작가는 아마 지난해까지 가까이 두던 사람들과 멀어진 모양이다. 그 사람들을 향해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가 떨어지는 장면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호승 작가의 현대시 '꽃 지는 저녁'이다. 여기서도 지는 꽃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는 슬퍼하고 아쉬워하고, 나아가 누군가를 원망한다. 화자의 이런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화자는 '꽃이 지는' 상황을 통해, 떠나간 사람으로 인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있다.
꽃이 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슬프다. 하지만 아무리 꽃이 져도 그렇지, 왜 자신을 잊었느냐고 따져 묻는 것이다. 꽃이 지는 상황에서도, 화자는 상대를 잊은 적 없는데 왜 상대는 자신을 잊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다. 이런 슬픔은 결국 배고픔까지 연결된다. 아마 화자는 정말 허기가 졌을 것이다. 꽃이 지는데, 사랑하는 사람까지 떠나갔으니 온몸과 온 마음이 허기진 것이 당연할 것이다.
꽃이 지는 장면은 참 슬프다. 꽃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시들고 떨어지는 장면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들에게 꽃이 지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인 것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낙화'는 다양한 문학 작품에 많이도 등장한다.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이나 지조나 절개가 꺾이는 상황에서의 안타까움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원망의 마음을 담아낼 때 등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 '낙화'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꽃이 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영원이 아니라 짧은 시간 존재하는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형기 작가의 현대시 '낙화'의 일부분이다. 이 시도 역시 낙화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화자는 떨어지는 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떠날 때를 알고 스스로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거두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낙화는 '결별'이지만 그것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양한 문학 작품 속 '낙화'를 통해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가 있으며, 물러설 때를 알고 물러서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