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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금요일
가정법에 담아 보낸…사랑, 그 절절한 감정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바를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가 내 마음을 세심하게 알아주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늘 공감과 이해에 목말라 있어, 상대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잘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언제나 온갖 비유와 상징을 사용해 내 마음을 절절하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특히 사랑을 나누는 연인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연인과의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연인이 내 감정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연인 사이의 대화는 기대와 서운함이 섞여 늘 어렵고 길어진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마어마한데, 연인이 그 마음을 몰라줄 때 생기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면, 서운함을 넘어 서러움과 원망이 몰려온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연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최대한 구구절절 자세히 전달하려 애쓴다. 문학 작품의 다양한 표현법도 내 감정을 최대한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이런 다양한 표현법 중에서도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가정법'이다.
고려시대 노래 '정석가' 중 일부다. 노랫말 속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화자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헤어질 수 없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가정법'을 택했다. 불가능한 상황을 몇 가지 설정하고,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너와 헤어지겠다'고 말한다. 너와 헤어질 수 없음을 최대한 강렬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설정한 불가능한 상황들은 정말 극단적이다. 모래밭에 구운 밤을 심으면 당연히 싹이 나지 않는다. 딱딱한 옥으로 연꽃을 조각해 바위에 붙인다 해도 꽃은 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쇠로 황소를 조각한다 해도 그 소가 풀을 뜯어 먹을 리 없다. 이러한 불가능한 상황을 몇 가지 나열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때 너를 잊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본심은 '절대 너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법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노래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정희 작가의 현대시에도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가정법이 등장한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와 고려시대 '정석가'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정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계령을 위한 연가'에서는 여러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상황만을 설정하여 가정한다. 대신 그 하나의 상황 설정이 꽤 세심하다.
일이 일어나는 배경은 눈 내리는 겨울이다. 일반적인 눈이 아니라 수십 년 만에 폭설이 내리는 겨울이다. 그 겨울에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계령에 고립되어 있다. 그런데 한계령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고립을 통해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붙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고립은 다소 자발성을 가진 것이다.
헬리콥터가 도착해도 손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연인과 둘만의 고립은 '축복'처럼 '눈부신 고립'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생사를 걸고서라도 연인과 둘만의 시간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어 한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때는 더욱더 상대가 내 마음을 잘 알아주길 바란다. 마음을 상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노랫말 속에서 가정법을 사용하여 연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달해 온 것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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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