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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3일 목요일

교양·진학 인문

심청의 희생은 정당했나…새 화두 던진 현대문학

고전소설 '심청전'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효심 깊은 '심청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심청전은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심청이의 효심을 칭찬하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인물들의 행동이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진다. 심청이가 바닷물에 뛰어든 일이 과연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한 심봉사의 행동도 의아하다. 딸이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 하는데,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소설 작가 최인훈은 심청전을 소재로 희곡을 창작했다. 희곡은 무대에서 공연할 것을 전제로 쓰는 연극의 대본이다. 대본 속 심봉사는 딸에게 하소연을 한다. 공양미 300석을 바치기로 했지만, 쌀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딸에게 슬며시 '장부자네' 이야기를 꺼낸다. 청이가 예전에 부잣집에서 첩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부잣집에 첩으로 들어가면 쌀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청이가 그 집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들어갔다고 말하니, 심봉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슬퍼한다.

심봉사는 자신을 위해 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심봉사의 모습은 현대 희곡뿐 아니라 고전소설 '심청전'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따라서 심청이의 희생은 아버지의 하소연에 못 이겨 강요당한 것으로 보인다. 장님이 눈을 뜨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신이 눈 뜨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희곡 속 심청은 쌀을 마련하기 위해, 뱃사람들에 의해 다른 나라에 기생으로 팔려간다. 고전소설에서는 바닷물에 재물로 바쳐지는 것이, 희곡에서는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변용된 것이다. 그런데 딸이 다른 나라에 팔려가는 상황에서 심봉사는 딸을 말리지 않는다. 딸을 배웅해야 발이 떨어지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끝까지 가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전소설의 행복한 결말과 달리 이 희곡의 결말은 아주 비극적이다. 심청은 결국 외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오는 처참한 삶을 살게 된다. 고전소설의 행복한 결말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현대 희곡의 비극적인 결말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심청전을 소재로 한 현대시다. 고전소설과 달리 장님으로 설정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심청이의 태도다. 눈물을 머금고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심청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어머니께 점자 책을 사 드릴 수 있지만,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사람은 모두 평등한 존재로 누구도 자신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심청이를 '효심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청이'는 가정에서는 딸이고, 사회에서는 어린 여자다. 그동안 아버지나 오빠와 같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에 의해 쉽게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무감각하게 고전소설 속 심청이의 희생을 교훈으로 삼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심청전을 소재로 한 많은 현대문학은 심청이의 희생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고전소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현대에 재해석되는 양상을 통해 우리에게 더 많은 의미와 질문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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