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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3일 목요일

교양·진학 인문

원초적인 그리움의 다른 말 '고향'

'타향살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슬픔이나 서러움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인간은 태어나 자란 '고향'을 늘 잊지 못한다.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고향은 힘들고 지칠 때 찾아가 위로받고 싶은 따뜻한 공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방인으로 외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그런 마음을 다양한 노랫말 속에 녹여냈다.

조선 시대 '김상헌'이 남긴 시조이다. 시 속 화자는 고국의 '삼각산'과 '한강물'에 작별 인사를 건넨다. 이 시는 작가가 고국을 떠나 타국으로 향하는 길에 지은 노래라고 한다. 그런데 '올동말동하여라'는 구절이 심상치 않다. 시절이 수상하기 때문에, 지금 고향을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고국의 산과 강을 향해 애틋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걸로 보아, 원하지 않게 기약 없는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것 같다.

'김상헌'의 또 다른 한시이다. 김상헌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청나라에 대한 저항의 뜻을 밝힌 정치가이다. 그는 조선의 왕이 청나라에 항복한 후, 적국인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끌려가는 그의 심정은 가늠할 수 없는 좌절과 슬픔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에게 타향살이는 그리움과 분노,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고향이 늘 사무치게 그리운 그에게 '절일(節日)'이 다가온다. '절일'은 '명절'을 이르는 말이다. 고향에서의 풍성했던 명절을 생각하니 화자는 더 울적해진다. 고향 사람들은 웃고 즐기겠지만, 자신을 떠나 보낸 우리 집은 슬픔에 잠겼으리라는 생각에 먹먹해진다.

백석의 현대시에도 고향을 떠나 명절을 맞이하는 이방인의 외로움이 드러난다.

화자는 명절에 '남의 나라'에 머무는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좋아하는 옛 시인인 '두보나 이백'도 이런 일을 겪었으리라 위로하지만, 쓸쓸함은 여전하다. 그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 떡국을 먹으려 한다. 명절날 먹는 떡국은 고향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타향살이를 하는 이방인에게 '명절'도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아플 때' 찾아온다.

또 다른 백석의 현대시이다. 백석과 김상헌은 모두 타향살이를 실제로 경험한 작가들이다. 그들의 노랫말 속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절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화자는 타향에 머물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의원을 찾아간다. 이방인의 쓸쓸함을 느끼는 중에 몸까지 아파 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간 의원은 여래와 같다. 여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다. 의원은 무심하게 그에게 고향을 묻고, 또 무심하게 그의 아버지와 친한 친구임을 고백한다. '반갑다' 말 한 마디 없이 서로의 신상을 확인한 후, 넌지시 웃어 보인 게 전부이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화자는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타향살이 중에는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찾아온다. 고향은 언제나 아프고 쓸쓸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향은 어머니의 배 속이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향을 떠나 '세상'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고향을 찾고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노랫말 속에서, 고향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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