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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3일 목요일
천한 직업≠천한 사람…조선후기 박지원의 통찰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의 '첫인상'을 형성하는 시간은 불과 몇 초라고 한다. 순식간에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고, 그것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직업'과 관련된 정보는 첫인상 형성에 아주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양귀자의 소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의 일부이다. 어느 날 집 화장실이 망가졌고 일꾼을 불러 수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일꾼을 감시하라는 것이다. 감시하지 않으면 일을 대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견적을 부풀리면, 공사 내용을 잘 모르는 우리는 사기를 당할 것이다. 따라서 일꾼들은 분명 수리비를 부풀려 우리를 속일 거라 걱정하고 있다. 아내는 일꾼 사내를 오늘 처음 봤다. 하지만 벌써 그에 대한 단단한 선입견을 만들어버렸다.
드디어 값을 치르는 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그토록 걱정하던 시간이다. 그런데 이 막노동 일꾼은 너무나 정직하게 자기 몫의 정당한 금액만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 견적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를 부르고, 일을 더 해준 것은 서비스라고 한다. 아내와 남편은 이 정직한 노동자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른 채 값을 치른다. 소설의 표현에 따르면 일꾼에게 돈을 내어주며 남편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도 직업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을까. '왕'이나 '양반'처럼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귀한 존재였고, 막일을 하는 노동자는 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지금보다 더 심했을까.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깨닫고,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훌륭하고 소중하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다.
조선후기 박지원의 소설 중 '예덕선생전'의 일부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말하고 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왜 '엄행수'와 벗으로 지내냐고 따져 묻고 있다. '엄행수'는 똥거름을 지고 나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지금으로 치면 화장실 청소부다. 제자는 스승이 마주 서기도 치욕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과 친분을 맺는 스승에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제자의 공격적인 물음에 스승은 차분히 대답하고 있다. 똥을 치우는 일이 염치없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똥을 치우는 일은, 염치없기는커녕 너무 고마운 일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행수가 배짱을 부려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고 버티면, 그 험한 일을 누가 선뜻 나서서 할 것인가. 마을은 순식간에 똥밭이 될 것이다. 모두가 직업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폄하하고 업신여길 때, 스승은 어려운 일을 의리 있게 해 내는 그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소설 속 스승은 제자에게 말한다. 자신은 감히 엄행수와 벗이 될 수 없으며, 그에게 예덕선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윗사람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직업이라는 꺼풀을 거두어 내고 그의 됨됨이를 제대로 평가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직업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지만 쉽게 고치기 힘들다. 이런 우리들에게 교훈을 건네기 위해, 조선시대 박지원은 '똥 푸는 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 우리에게 남겼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알리는 방법으로 소설 쓰기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소설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건네고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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