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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3일 목요일

교양·진학 인문

일상을 떠나…윤선도도 즐겼던 일 년 살기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참 '여행'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신비롭고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 여행은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을 버티는 힘을 준다.

 

 

최근에는 단기 여행을 넘어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가 유행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여행자'로서 낯선 곳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도 '현지인'처럼 생활하며 한 달 이상 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여행은 어땠을까? 사실, 과거에는 '여행'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었다. 해외여행은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낸 현대 문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윤선도'라는 정치가는 낯선 곳에서의 '일 년 살기'를 시도했다. 그는 일상을 떠나 '보길도'라는 섬 마을에 가 일 년이 넘는 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껴 떠나고 싶어 했다. 낯선 곳으로 떠나 현지인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길 원한 것이다. 지금 유행하는 일 년 살기와 같은 모습이다.

윤선도는 조선 인조때 고위직 관료였다. 세자의 스승까지 맡았던 아주 높은 직위의 정치가다. 그의 일상은 서울에 머물며 정치가로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의 전라도에 속하는 '보길도'라는 섬으로 가, 정치가로서의 삶을 버리고 섬마을 어부처럼 지내며 노래를 지었다.

그때 지은 노랫말이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다. 사시(四時)는 사계절이라는 뜻이니, '어부사시사'라는 제목은 어부의 사계절을 담은 노래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높은 양반들도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 일 년 살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섬마을에서 어부처럼 지내며 지은 일 년 살기의 노래가 바로 '어부사시사'라고 할 수 있다.

 

어부사시사는 각 계절에 해당하는 노래를 10개씩 지어, 총 40개의 노랫말을 가지고 있다. 위 노랫말은 네 번째 봄노래와 아홉 번째 가을노래로,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우기 위한 후렴구를 제외하고 현대 국어로 풀이해 제시한 것이다.

봄노래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여행지의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가 원래 머물던 조정이나 양반집 즉, 도시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어부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시골 섬마을의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래 머물던 곳과는 최대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여행의 정석인 것 같다.

일상과 비슷한 곳으로 떠난다면, 굳이 일 년 살기를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을노래에서는 자신이 더 이상 양반 사대부가 아니라 어부로 지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좁은 배가 세상보다 좋다고 자부하면서, 앞으로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여행지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첫 번째 가을노래다.

이 노래는 아무래도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양반 지위를 버리고 촌마을에 머무는 작가를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답이다. 세상 밖에서 가장 좋은 일이 어부라고 하면서, 어부가 얼마나 좋으면 옛사람들이 그림마다 그려놨겠냐고 한다. 일 년 살기를 마음먹은 이상, 자신의 거처가 좋다고 자부해야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피할 수 있다. 남들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일상에서 벗어나 너무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노랫말이다.

 

 

가을노래 두 번째다. 작가는 이제 원래 머물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게 느껴질수록 더 좋다고 한다. 아마도 시골에서 도시를 바라보니, 저렇게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마음이 든 모양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일상을 피해,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작가의 만족감이 드러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민하는 내용도 그 모습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조선시대 윤선도는 복잡한 자신의 일상을 떠나, 섬마을에서 현지인처럼 일 년 살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끝에 남긴 아름다운 노랫말로 현대의 독자와 공감하고 있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