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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두려움, 슬픔, 기쁨, 감탄… 감정은 무슨 쓸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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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어울리는 삶
인지력만으론 어려워
이성과 벗하는 감정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해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이 맹목적인 '공부'의 압박으로 고생스럽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는 동아리 활동으로 교내 합창단 활동을 했다. 나를 포함한 단원들은 매일 음악실에 모여 악보를 읽고, 서로의 음정과 박자를 맞춰보고, 연말에 있을 공연을 준비했다.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은 꽤 즐거웠지만, 학생의 목적이 대학과 공부 일변도였던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깨닫기는 썩 쉽지 않았다. 그 활동이 내게 또 다른 중요한 '공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꽤 나중이었다.

흔히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란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일어났다" "V=IR"처럼 세계에 관한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인지적(cognitive) 과정이다. 흔히 '국영수사과'로 대표되는 과목들은 이런 종류의 인지력을 요구한다.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공부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람은 나와 외부에 대한 건조한 지식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한 개인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 문학이나 예술 작품 등을 감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정서를 추측하면서 공감하며 사회적 연대를 이룬다. 합창부에서 내가 했던 공부가 바로 그런 공부였다. 작곡가가 노래를 통해 표현한 감정을 파악하고, 그 감정을 단원들과 함께 재연하고, 그 감정을 함께 표현하려는 목적하에 다른 사람들의 표현에 신경 쓰고 맞추는 모든 과정이 바로 정서의 공부였다. 이런 감정능력이 고장 난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여겨지기 어렵다.

인간 삶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인 감정은 오래전부터 연구돼 왔지만 감정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깔끔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건 꽤 곤란한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에는 '감정'으로 불리는 현상이 통일되기 어렵게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일조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공황 같은 감정은 눈에 보이게 일어나지만 적대감을 표출하지 않고도 가질 수 있는 성향이다. 또 욱하는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우울감은 오래간다. 그리고 놀라움 같은 감정은 특이한 얼굴 표정과 연결돼 있지만 후회 같은 감정은 어떤 얼굴 표정과 딱히 연결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감정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모습은 정서적 삶을 풍부하게 하더라도 이론가에게는 골칫거리다. 그래도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를 식별해냈다. 예를 들어 초고층 빌딩의 스카이워크를 걸으면서 생기는 두려움의 감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거기서 "아래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는 고층의 유리 위를 걷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평가적 요소), 심장이 뛰며(생리적 요소), 불쾌함을 느끼고(현상적 요소), 소리를 지르며(표현적 요소), 단단한 땅으로 가려고 하고(행동적 요소), 긴장한다(정신적 요소). 이 수많은 구성요소 중에서 이론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정확히 어떤 요소가 감정에 본질적인지를 찾는 일이다. 현재의 이론가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갈라져 있다. 첫째는 감정이 시각이나 청각 같은 일종의 느낌이라는 입장이다. 둘째는 감정이 세계에 대한 일종의 평가라는 입장이다. 셋째는 감정이 다른 행동을 준비하는 동기부여 상태라는 것이다.



각 입장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느낌으로서 감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날 때 그 변화를 우리가 자각한 그것이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때리는 동작을 자각함으로써 화가 나고, 내 몸을 덜덜 떠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두려워한다. 이런 입장의 문제 중 하나는 신체적 변화가 서로 다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다리를 떠는 것은 두려움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초조함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감정이 단지 신체적 변화에 대한 자각일 뿐이면 두려움과 초조함이 구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평가로서 감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세계의 어떤 모습에 대한 판단이라고 한다. 초고층 빌딩의 스카이워크를 걸을 때 나는 그 스카이워크는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감정을 세계에 관한 가치판단과 동일시하는 입장을 판단주의라고 한다. 이 입장의 대표적인 문제는 그게 이유에의 저항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스카이워크 사례로 돌아가면 당신은 그 스카이워크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지만 그것의 안전성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안전에 관한 판단은 당신의 위험에 관한 판단을 철회해야 하지만 당신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이 판단이라면 왜 당신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가?

셋째, 동기부여로서 감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어떤 행동을 준비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어떤 미술 작품을 보고 경탄했다고 해보자. 당신은 경탄에 의해서 어떤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어떤 감정이 여러 가지 행동을 준비할 수도 있고 한 가지 행동이 여러 가지 감정에서 준비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면 특정한 행동 준비 상태로 서로 다른 감정을 구별하기는 어려워진다.

감정은 쓸모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충동적인 행동을 조장하고, 자신을 속이도록 조장한다는 점에서 쓸모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의 힘은 사람들이 좋은 행동을 유지하도록 돕기도 하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데에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성과 벗하는 감정은 우리의 삶을 전반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틴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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