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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교양·진학

교양·진학 인문

합리성에 대한 믿음으로 인류는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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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 "왜?"라는 질문 하자
사람들 각자 행동과 믿음에는
도덕적이거나 이해타산적이거나
최소한의 타당한 기준 필요
나와 다른 판단 수용할 수 있어야
합리적 사회로 가는 첫발 가능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일부분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의문사를 사용해 질문한다. 예를 들어 어제 누군가가 저녁 식사를 했던 일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누가 먹었어?" "무엇을 먹었어?" "언제 먹었어?" "어디서 먹었어?" "어떻게 먹었어?" 그런데 앞의 의문사들과 달리 '왜?'가 들어간 질문은 약간 다른 종류의 대답을 원하는 질문으로 느껴진다. "왜 먹었어?"를 질문할 때 우리는 어제 저녁 식사의 세부 사항을 묻는 게 아니라 저녁 식사의 이유를 묻는다. 물론 저녁 식사의 이유는 다른 사실일 수 있다. 내가 배고팠다는 사실이 저녁 식사의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왜 질문'의 대답은 사실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그 사실들 간의 뒷받침을 요구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유를 찾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이성은 옳은 이유를 찾는 능력이다. 근대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충분이유율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에서도 합리성이 중요하다. 이 체제는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 각자가 무엇이 옳거나 좋은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인이라는 전제하에서 운영된다. 그래서 이유를 찾으려는 힘, 즉 이성은 인류에게 매우 독특한 것이고, 이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인류의 발전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왜 이유를 찾을까? 우선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거나 믿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저 하늘에 빛나는 어느 한 별이 금성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이때 그것을 금성의 궤적에 관한 예전의 관측들과 계산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다. 그 근거에 따라 저 별이 금성이라고 판단되면 저 별이 금성이라는 믿음을 추가하고, 아니라고 판단되면 저 별이 금성이 아니라는 믿음을 추가한다. 이렇게 참인 믿음을 가지고 거짓인 믿음을 피하는 능력은 이론이성이고, 정당한 이유로 믿은 믿음은 이론적으로 합리적이다.

어떤 이유가 이론적으로 합리적일까? 철학자들은 합리적인 믿음은 서로 일관적이어야 하고, 어떤 것을 믿기 위해서는 최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데 합의한다. 하지만 아무것이나 증거가 될 순 없다. '2+2=4'라는 사실이 내가 고등학생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보통 증거로는 네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외부 대상에 대해 얻는 지각이 있다. 우리는 빨간 대상을 보고 빨간 감각을 지각하고, 이 지각을 '저 공은 빨갛다'는 믿음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둘째, 과거 사건에 대해 얻는 기억이 있다. 지은이가 어제 오전에 병원에 갔던 내 기억을 '지은이가 국어 수업을 빠졌다'는 내 믿음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어떤 믿음에서 다른 믿음을 추론한다. '지영이가 전교 1등'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적어도 한 명이 전교 1등'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증언을 참고해 믿음을 가진다. 내게 "아까 지영이가 네 책상 주변을 얼쩡거리던데"라던 지수의 말은 지영이가 내 지갑 도둑이라는 믿음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유들은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다. 지각은 착각일 수 있고, 기억과 증언은 부정확할 수 있으며, 추론은 다른 전제가 있으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유를 찾는 또 다른 상황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예를 들어 당신이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고, 내 시야에 들어오는 대각선 앞자리에 우리 반 1등 친구가 앉아 있다고 하자. 당신은 문제를 풀다가 막혔고, 1등 친구의 답을 베끼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당신은 친구의 답을 훔쳐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친구의 답을 훔쳐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친구가 그 과목에서 항상 만점을 받아왔다면, 그리고 내가 훔쳐보고 들키지 않는다면 훔쳐보고 내 점수를 챙기는 일은 내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구의 답을 훔쳐보면 안 되는 것 같다. 내 이익과 상관없이 훔쳐보기는 정당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낳는 능력을 '실천이성'이라고 하고 정당한 이유로 생긴 의도 및 그 의도에서 이어진 행동을 실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가 실천적으로 합리적일까? 우선 어떤 경우에 우리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따진다. 위의 중간고사 상황처럼 당신은 친구의 답안을 훔쳐보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훔쳐보기를 삼갈 수 있다. 이런 이유는 도덕적 합리성을 가진다고 한다. 반면 어떤 경우에 우리는 어떤 행위가 내게 좋은지 나쁜지를 따진다. 다시 위의 상황처럼 당신은 친구가 높은 확률로 답을 맞히고 그걸 훔쳐봐도 들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훔쳐보는 게 내 점수의 상승이라는 이익을 가져준다는 근거로 답안을 훔쳐볼 수 있다. 이런 이유는 이해타산(利害打算)적인 이유, 타산적 합리성을 가진다고 한다. 실천적 합리성이 이렇게 분류되더라도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도덕적 고려와 타산적 고려를 모두 해야 한다. 다시 중간고사 상황에서 당신은 훔쳐보기 위한 이유와 훔쳐보지 말아야 할 이유 중에서 어느 하나를 높게 평가해야만 당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성은 개개인만 아니라 개인 간에도 요구된다. 당신과 어떤 사람이 서로 논쟁한다고 생각해보라. 건전한 논쟁이 되려면 상대방의 말이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건전한 논쟁은 우선 상대방의 생각을 대체로 합리적인 것으로 자비롭게 읽어줄 것을 요구한다. 상대방과 내가 의견이 다른 것은 둘 중 한 명이 (또는 모두가) 잘못되거나 부족한 이유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합리성을 공유한다는 전제가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비합리적인 상대방의 말이나 글은 의미 없는 나열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과 부정이 만연하다고 해도, 합리성은 보다 나은 개인과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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