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소 남해 상주중학교장
입력 2026-06-01 09:09teen.mk.co.kr
2026년 06월 09일 화요일
작은 식물이 주는 큰 기쁨

윤영소 남해 상주중학교장
입력 2026-06-01 09:09

(출처: 게티이미지 뱅크)
헤르만 헤세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 수목과 화초 그리고 논밭의 작물들까지, 연중 가장 분주한 때입니다. 햇빛은 따뜻하고 비는 적당하고, 흙도 부드러워서 뿌리가 신나게 뻗어나가는 시간이거든요.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데미안'의 작가로 잘 알려진,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알을 깨뜨려야 한다는 그 유명한 문장을 쓴 사람 말이에요. 헤세는 글 쓰는 일만큼이나 정원 가꾸는 일을 사랑한 작가였습니다.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은 그가 정원에서 보낸 시간을 글과 시, 그리고 직접 그린 수채화로 남긴 책입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좀 의외라고 느낄지도 몰라요.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작가가 쓴 글치고는 너무 소박하거든요. 봄날에 토마토 모종을 심다가 허리가 아팠던 이야기, 비 온 뒤 달팽이가 상추를 다 갉아 먹어서 속상했던 이야기, 가을 낙엽을 태우며 멍하니 불을 들여다본 이야기. 이런 작은 풍경과 거기에서 나오는 잔잔한 감흥!
"나무는 성스러운 것이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알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는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일, 헤세에게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식이었어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시기에도 헤세는 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화단의 흙을 고르고 묘목에 물을 주는 그 단순한 일들이 그를 살게 했다고 그는 고백해요. 관찰과 몰입, 그리고 대상과의 일체감을 느끼면서 그는 치유와 회복을 시간을 보냈던 거예요.
새싹이 흙을 밀고 올라오는 장면은 바로 생명의 기적을 보는 순간이었던 거죠. 신비와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작은 나무와 화초에 다 들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헤세처럼 너른 정원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흙이 없는 아파트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흙을 만질 일은 거의 없죠. 게다가 웬만한 나무는 길가의 가로수가 아니면, 일상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도시의 생활이잖아요.
그렇다면 작은 화분 한두 개 정도를 들여놓는 건 어떨까요? 책상 위에 올려놓을 만한 다육식물도 좋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둘 작은 제라늄 화분도 좋고, 체리 세이지·로즈메리·라벤더 등 허브 계열도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물을 주고 잎이 시들지 않게 살펴보는 일에 그치겠지만, 며칠만 지나도 신기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새잎이 돋는 자리는 늘 정해져 있다는 것, 잎이 햇빛 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인다는 것, 물을 주고 나면 줄기가 살짝 통통해진다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물은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쯤 되면 헤세가 왜 식물과 '이야기'한다고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나요? 잎이 축 처져 있으면 목이 마르다는 신호고, 잎끝이 갈색으로 마르면 햇빛이 너무 강하다는 뜻이고, 줄기가 한쪽으로만 길게 뻗으면 빛이 부족해서 빛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거죠. 식물은 말은 안 하지만 온몸으로 자기 상태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걸 알아보는 것이 식물과의 대화예요.
돌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흙과 물과 빛과 바람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어떤 흙이 잘 마르고 어떤 흙이 오래 축축한지, 같은 양의 물을 줘도 왜 어떤 날은 금방 마르고 어떤 날은 그러지 않는지, 햇빛이 직접 닿는 자리와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자리에서 식물이 어떻게 다르게 자라는지.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게만 보이던 것들이, 관찰을 거듭하다 보면 점점 이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합성, 증산작용, 삼투압 같은 과학 교과서의 단어들이 그제야 살아 있는 의미로 다가오죠. 어쩌면 식물 한 그루를 제대로 키워 본 사람은 책으로만 배운 사람보다 자연을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오월에서 유월로 이어지는 이즈음, 헤세의 책을 읽으면 더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책에 묘사된 풍경이 바로 우리 창밖에 펼쳐져 있거든요. 글을 읽다가 가까운 공원에 나가 보면, 헤세가 본 것과 비슷한 풍경을 우리도 만날 수 있어요. 신록은 더욱 짙어지고, 생명의 기운이 넘쳐요. 그 가운데 있으면 사람도 평화의 충만함에 젖을 겁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요. 작은 화분 하나와 헤세의 책 한 권으로 봄을 마무리하면서 여름을 열어가면 어떨까요?
전 남해상주중 교장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