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소 남해 상주중학교장
입력 2026-05-04 09:09teen.mk.co.kr
2026년 05월 11일 월요일
지배자가 된 동물들 … 인간 약점을 반사하다

윤영소 남해 상주중학교장
입력 2026-05-04 09:09
조지 오웰 '동물농장'

(출처: Whisk 생성)
소설의 배경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매너 농장'. 어느 날 밤, 농장의 동물들이 헛간에 몰래 모입니다. 인간에게 일만 하다 죽어가는 삶을 더는 참을 수 없다!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이 한곳에 모인 동물들의 눈을 반짝거리게 합니다.
늘 술에 취한 농장 주인 존스 씨가 동물들을 굶기고 괴롭히자 메이저 영감의 호소에 동물들이 흔들립니다. 돼지, 말, 닭, 양, 개, 저마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다르지만 이날 밤만큼은 하나가 돼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릅니다. 마침내 인간을 농장에서 몰아내고, 농장 주인이 동물들로 바뀌고 맙니다.
인간을 쫓아내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데 성공하죠!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꾸고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들이 수확한 곡식을 공평하게 나눠 먹어요. 담벼락에는 멋진 '7계명'도 적어 놓았답니다. 그중 제일 유명한 문구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것이었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945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겉보기엔 단순한 우화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이건 그냥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곧 눈치채게 되죠. 조지 오웰은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꿰뚫는 눈을 가진 비평가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글을 쓰고, 권력이 언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쳤던 작가예요. 그가 당시 소련에서 벌어지던 혁명과 독재를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를 전혀 몰라도 괜찮아요.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특정한 시대와 나라를 훌쩍 뛰어넘는,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니까요.
혁명에 성공한 동물들은 곧바로 7계명을 만듭니다. 그 핵심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것. 두 발로 걷는 인간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죠. 모두가 동등하게 일하고 함께 나누고 누구도 누구 위에 군림하지 않는 세계, 그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초반의 농장은 그렇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다들 힘을 모아 일하고 수확물을 고르게 나누고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하루를 마칩니다.
그런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가장 영리한 돼지들(특히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돼지)이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리기 시작하거든요. 처음엔 그럴듯한 이유가 붙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잘 알기 때문에"라거나 "전체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에"라는 식으로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7계명이 슬그머니 바뀌어 있습니다. 처음에 새겨 놓은 문장과 달라졌는데도 따지면 "원래 그랬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눈치채기 어렵게, 아주 조금씩이요.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 중 하나는 스퀼러라는 돼지입니다. 나폴레옹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이 돼지는 말을 정말 잘해요. 어떤 불편한 상황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의심스러운 일도 논리 있어 보이게 포장합니다. 동물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릴 때마다 스퀼러가 등장해 몇 마디 늘어놓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집니다.
말(馬) '복서'도 중요한 캐릭터예요. 최고의 일꾼인 복서는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아요. 무슨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더 열심히 일하면 돼"라는 말을 되뇌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성실함과 순수함이 눈부시게 느껴지다가 복서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보게 되는 순간, 많은 독자가 그 대목에서 가슴이 무너진다고들 해요. 기분 좋게 술술 읽다가 갑자기 뭔가 무거운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그 느낌, 이 책이 주는 특별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동물이라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술술 읽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서늘한 느낌의 반전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돼지가 인간처럼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 마지막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조지 오웰의 또 다른 작품 '1984'를 연이어 읽는 것도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될 겁니다. 미래 사회를 무섭도록 예리하게 묘사했어요. '빅 브라더'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는 세상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이 떠올라 소름이 돋을지도 몰라요.
그는 '영국 산문의 정수'로 불릴 만큼 아주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장을 쓰는 것으로 명성을 날렸는데, 그의 에세이들을 읽어보면 글을 어떻게 써야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지 배울 수 있죠. '동물농장'과 '1984'는 분량도 짧으니 조지 오웰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만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전 남해상주중 교장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