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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3일 화요일

문과생 입지 줄었지만 인문학은 여전히 강하다

차민기 문학박사 이투스북 연간검토단

입력 2023-05-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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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등 미래 기술 발달은
인문학도에게 새로운 기회
교감하고 사유하는 힘으로
신기술과의 접점 모색해야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는 2010년대 이후 소위 '전·화·기(전자·화학·기계)', 정보기술(IT) 위주의 산업 재편 과정에서 신종 유행어처럼 등장한 말이었다. 처음에 문과생의 넋두리처럼 시작된 이 말은 이과 위주의 편향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단순한 유행을 넘어 문과생의 사회적 박탈감을 대변하는 보통명사처럼 확산됐다. 급기야 최근 대학들은 인문계열 학과를 하나둘씩 폐지해가고 있다. 지성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아카데미조차 철저한 자본 논리에 의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과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질 뿐이다.


문과 침공과 의사쏠림 현상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치러진 2022학년도 대입에서는 수능 점수가 모자랐던 이과 수험생 일부가 목표한 대학의 문과 모집단위에 지원해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문과 침공'의 시작이었다.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능에서 이과생의 문과 침공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2022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정시모집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8개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안타까운 건 대다수 학생이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할 때 진로 연계보다 그저 대학 자체만을 선택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진학 후 학습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직업군으로의 쏠림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초등 4학년 의대 입시반'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는 특정 지역, 특정 학군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물으면 대부분이 '돈'을 1순위로 꼽는다.

자신이 어떤 것에 소질이 있고,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졸업 후에 안정적이고 취업이 잘되는, 그러면서도 경제적인 부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이 요즘 학생들의 꿈과 목표인 듯하다.

대학 인문학의 몰락:프라임 사업

이공계 쏠림 현상과 인문학의 위축은 2016년 교육부가 주관한 '프라임 사업'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사회와 산업의 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3년간 총 6000억원을 지원하는 재정 지원 사업이었다. 교육부는 한국고용정보원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인문·사회계열'과 '공학계열'의 인력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프라임 사업을 선도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4년제 대학 사회계열에선 21만여 명의 인력이 초과공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비해 기업이 원하는 공학인력은 21만5000여 명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교육부는 인문·사회·예체능계 인원을 줄이고, 이공계 인원을 늘리기 위한 대학개혁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는데 2016년부터 대학별로 적게는 50억원, 많게는 150억여 원의 재정 지원을 통해 대학이 자체적으로 몸집 가꾸기에 나설 것을 유도했다.

전국 대학이 앞다퉈 인문·사회·과학계열 학과를 통폐합했던 것이 이때 즈음이다.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이 대학을 인수해 기업 경영의 원리로 아카데미를 장악한 것도 이즈음이다. 결국 교육부의 사업이 학교와 현실을 이공계 중심의 편향된 분위기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문송의 시대는 문과 학생 나름의 이유 있는 불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다시 인문학을 말하다

IT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정보 서비스 산업으로의 경제구조 변화 속에서 인문학은 너무 느긋하고 여유로운 속성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에 도취돼 오로지 '자본 획득'에만 열중했던 서구 사회가 그들 내부의 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양 정신에 주목했던 것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느리지만 깊은 사유 안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느끼게 되는 그 '떨림'의 관계는 현대인에게 더할 수 없는 위안이자 삶의 의미가 됐다.

오늘날 최첨단 휴대폰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달되는 숱한 메시지는 바로 그런 떨림의 관계를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SNS를 통해 오가는 다양한 이모티콘이 단순한 메시지의 기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대신하는 기호라는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방송사가 제작한 SF 드라마 '웨스트 월드(Westworld)'가 미래 사회의 첨단 기술을 활용해 서부 시대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드라마는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개체와 개체 간 교감이 결국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힘임을 역설해 보였다.

최근 K-컬처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막강해졌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부문 분석 결과 지난해 1분기 동안 한국 작품 시청 시간이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시청률이 단순히 드라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능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이에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도 한국 콘텐츠 선점에 혈안이라고 한다.

앞으로 기술의 발달은 또 다른 형태의 미디어 환경을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미디어를 채워갈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증가할 것이다. 이는 문송의 시대를 사는 현 세대가 개척하고 도전해가야 할 목표이자 새로운 시장일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더 멀리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챗GPT'에서도 인문학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 분명하다. 학습에 필요한 대화를 어떻게 구성하고, 그 대화를 통한 지식체계를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인문학이 담당해야 한다. 인간에 의해 개발된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실력을 드러내 한때 인류를 당황하게 했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창의적 사고와 불연속적 상황 인지에 따른 문제 해결 능력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미래 기술의 발달은 이공계 위주의 편향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위축돼온 인문학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다만, 그 기회가 케케묵은 과거를 곱씹는 인문학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살이의 가장 근본적인 '결'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접목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을 개발해야 한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그저 취직만을 목표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편향된 틀 속에 자신을 스스로 갖추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과 적성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기회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준 '기회의 확장'을 우리 청소년이 맘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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