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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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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물가'에 한국은행이 긴장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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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관성 #임금-물가 소용돌이 #물가안정목표제 #디스인플레이션 #급랭전략 #점진주의 전략 #희생률

고물가가 임금상승 부추기고
다시 물가상승률 끌어올리는
임금·물가 소용돌이 불러와
금리인상·통화축소 정책 사용
물가안정책이 실업증가 불러
경제 상황따라 신중히 집행
사진설명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 채소가게에서 시민들이 양파 등 채소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1. 물가안정정책

중앙은행은 통화량과 기준금리를 조절해 민간(가계·기업)의 자금 대차거래에 적용되는 시중금리와 자금의 양을 조절합니다. 중앙은행은 통화량과 금리라는 두 가지 통화정책 수단으로 민간지출(소비·투자)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경기 변동(경기 침체·경기 과열)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경기 침체로 인해 경기 부양이 필요한 시기에는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 증가를 통해 소비와 투자 진작을 유도하고, 경기 호황으로 경제가 과열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경우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과 통화 공급 감소를 통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기 호황이나 불황 국면을 맞아 의도적으로 민간지출을 위축시키거나 자극해 지나친 경기 과열이나 경기 침체를 막는 정책을 경제안정화정책 또는 경기안정화정책이라고 합니다.

특히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이 달성해야 할 최우선 목표로, 물가 불안은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고 민간의 구매력 감소를 가져와 소비와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경제 활력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립니다. 더욱이 물가 상승이 장기화될 때 기대물가상승률이 높아져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이는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에 추가적인 인플레이션을 야기합니다. 즉, 사람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그 자체로 실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인플레이션 관성(inflation inertia)이 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정책의 일환으로 기준금리 인상이나 통화 공급 축소와 함께 물가 안정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끊임없이 시장에 전달하는 것은 기대인플레이션 고조가 임금 상승을 부추기고 이것이 또다시 인플레이션 심화를 불러오는 악순환, 이른바 임금·물가 소용돌이(wage-price spiral)를 끊기 위한 노력인 셈입니다.


현행 물가안정정책은 목표인플레이션을 제시하고 목표치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경우 금리 인상과 통화 공급 감소를, 목표치보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경우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 증가를 통해 목표인플레이션을 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통화정책을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기팅·inflation targeting)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1998년 도입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통상 한국은행의 목표인플레이션은 3±5%포인트입니다. 이때 목표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상 및 통화 공급 감소와 같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라고 합니다. 즉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안정정책의 또 다른 이름인 셈입니다.


2. 물가안정전략

디스인플레이션을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에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통화 공급을 줄이는 등 짧은 기간에 신속히 물가 안정을 기하는 방법과 시간을 두고 서서히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단기간에 급격히 금리를 상승시키고 통화 공급을 줄여 민간지출 감소와 인플레이션 하락을 유도하는 것을 급랭 전략(cold-turkey strategy)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급격히 경기를 냉각시켜 물가를 잡겠다는 것입니다. 한편 조금씩 반복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 공급을 감소시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민간지출을 감소시키고 물가상승률을 목표치까지 하락시키는 방법을 점진주의 전략(gradualism)이라고 합니다.

물가안정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전략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은가 하는 점입니다. 이때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 가지 시사점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업률이 현재보다 상승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 음(-)의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업 증가와 같은 고용지표 악화는 물가 안정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인 셈입니다. 따라서 두 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본질적 함의는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당면한 경제 상황에서 더 적은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물가 안정을 위해 실업 증가가 불가피하다면 실업 증가라는 사회적 고통을 덜 가져오는 것이 더 나은 전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두 디스인플레이션 전략에 수반되는 고통을 비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물가상승률을 1%포인트 낮추기 위해 발생하는 실업률 증가분의 누적치를 계산해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를 희생률(sacrifice ratio)이라고 합니다. 가령 현재 물가상승률이 6%이고 목표인플레이션이 2%일 때 목표인플레이션을 한 번에 달성하려면 한 번에 물가상승률을 4%포인트 낮춰야 합니다. 따라서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고 통화 공급도 급격히 줄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업률이 현재보다 3%포인트 증가했다면 희생률은 실업률 증가분 3%포인트를 물가상승률 하락분 4%포인트로 나눈 0.75가 됩니다. 한편 물가상승률을 6%에서 4%로 한 번 낮추고, 그다음에 시간을 두고 다시 4%에서 2%로 낮춘다고 하면 금리를 서서히 인상하고 통화 공급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업률이 처음 통화 긴축 때 1.5%포인트, 두 번째 통화 긴축 때 1.0%포인트 증가했다면 희생률은 실업률 증가분 누적치 2.5%포인트를 물가상승률 하락분 4%포인트로 나눈 0.625가 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 점진주의 전략이 급랭 전략에 비해 희생률이 더 작습니다. 이는 물가 안정에 수반되는 사회적 고통이 더 적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점진주의 전략이 급랭 전략보다 항상 더 물가 안정에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는 국가별로, 시기별로 경제 상황이 다른 만큼 물가 안정에 유용한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물가안정전략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물가 안정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고통을 길고 오래 받는 것이 낫기도, 또 때로는 고통을 짧고 강하게 받는 것이 낫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