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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경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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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시스템 정보 저장소 '빙하'가 사라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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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의 서현진 편을 보고 있었다. 그의 긴 무명 시절 이야기에 깊이 공감이 갔다. 무명 시절 부모님이 그에게 건넸던 "안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니"라는 말은 지난 5년간 내가 스스로 되뇌었던 말이기도 했다. 연구 성과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나는 큰 좌절을 겪었다. 연구자의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깊이 고민했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2021년 나는 캐나다 로키산맥에 위치한 컬럼비아 아이스필드에서 시추한 10m 길이 고산 빙하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곳은 북극 다음으로 큰 빙하지대로, 기후변화로 인해 급격히 녹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 빙하는 2100년이 되면 2005년과 비교했을 때 70% 이상 사라질 것으로 예상될 만큼 빠르게 녹고 있다.

빙하 시추 후 내가 가장 먼저 진행한 작업은 물 동위원소 분석이었다. 물 동위원소 값은 여름철에는 높고 겨울철에는 낮은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계절적 변화를 통해 빙하의 연령을 추정할 수 있어 가장 먼저 분석을 진행했다. 데이터를 측정한 뒤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빙하를 시추한 시점이 2020년 4월이었으니 그래프에서 0m 지점은 2020년 4월을 나타낸다. 데이터는 예상대로 낮아졌다가 올라가는 곡선을 그리며 계절적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4.2m부터 이상현상이 나타났다. 그래프가 자로 그은 듯 평평해지며 더 이상의 변화가 없었다. 그래프에서 패턴이 사라졌다는 것은 해당 구간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에 기록된 데이터가 혼합돼 균질해졌음을 의미한다. 패턴이 사라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기후변화가 빙하에 남긴 상처를 생생하게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빙하가 녹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빙하를 물로 변화시킬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는 태양광, 바람, 구름 등 여러 환경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따뜻한 공기다. 산맥을 넘어 내려오는 따뜻한 바람은 빙하 표면의 온도를 높이고 얼음을 녹인다. 게다가 구름은 햇빛을 차단할 것 같지만 때로는 따뜻한 복사열을 빙하로 전달해 '덮개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빙하의 크기, 모양, 그리고 위치 또한 융해 속도에 영향을 끼친다. 경사가 급한 지역이나 빙하 표면이 햇빛을 많이 반사하지 못하는 어두운 곳은 더 빨리 녹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먼 거리에서 날아온 먼지나 산불로 발생한 검은 입자들이 빙하 표면에 쌓이면, 표면이 어두워져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결국 빙하를 녹일 수 있다.

데이터를 확인한 후 회의를 열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교수가 말했다. "이제 중위도 지역의 고산 빙하 연구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빙하가 녹지 않고 기후 기록이 연속적으로 남아 있는 시료를 찾는 일이 불가능해질지도 몰라." 연구를 진행한 지 2년이 지난 그날 우리는 연구가 실패로 끝났음을 선언해야 했다.

빙하가 녹는다는 것은 마치 몇 년간 찍어둔 휴대전화 속 사진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사람들은 기후 데이터를 직접 측정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반대로 산업혁명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측정한 기후 데이터가 없다는 뜻이다. 이를 더 잘 알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서 빙하를 확보하고 과거 데이터를 최대한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빙하학자들이 빙하를 시추하고 이를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아이스 메모리 프로젝트(Ice Memory Project)다.



이 프로젝트는 훼손될 위험에 처한 빙하 코어를 수집하고 이를 보존 및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집된 빙하 코어는 안전한 남극에 보관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보존될 예정이다. 연구 실패는 연구자에게는 사망선고와도 같다. 하지만 아직은 운이 좋아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 누군가가 이를 계기로 빙하에 관심을 갖고 먼 미래에 빙하학자로서 나와 만나게 되기를. 그날이 올 때까지 나 또한 빙하학자로서 묵묵히 잘 살아남고 싶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틴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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