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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탄소배출 얼마나 늘었는지 … 빙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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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연구의 가장 큰 매력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땅을 탐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여름, 나는 북반구 극지에 위치한 그린란드 국제 심부 빙하 시추 현장을 다녀왔다. 이곳은 빙상 깊숙이 자리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시추 현장에 도착하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빙하와 하늘뿐이었다.
극지 환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혹독했다. 현장은 해발 약 25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도착한 후 며칠 동안 약한 고산병 증상을 겪었다. 빙하의 90%에 달하는 높은 반사율 때문에 선글라스를 써도 쓴 걸 잊어버릴 만큼 눈부셨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눈이 아프고 눈물이 절로 났다. 여름철 백야로 인해 해가 지지 않아 몸이 계속 깨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온은 영하였고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급변했다. 이런 극한 환경 속에서 일과를 마친 후 동료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와 술 한잔은 잠시나마 긴장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독일인 과학자 셉이 칵테일을 준비하던 나에게 105m 깊이에서 채취한 지름 10㎝, 길이 1m의 원통형 빙하 코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빙하 코어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망치로 빙하 코어를 두드려 작은 조각으로 만들었다. 셉은 빙하 조각을 붉은빛이 도는 칵테일에 넣었다. 칵테일 잔에 들어 있는 빙하 조각이 마치 기후변화로 인해 뜨거워진 붉은 바다 위를 떠도는 유빙처럼 보였다. 칵테일 잔을 한참 바라보던 중 빙하 조각에서 공기 방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칵테일에 담긴 빙하 조각을 바라보던 셉이 나에게 물었다. "이 빙하가 몇 년 전에 형성된 것 같니?" "약 300년 전에 형성된 것 같아요"라고 답하자 그는 얼추 맞다고 했다. 그러곤 창문 밖 얼음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왜 우리가 얼음 대신 빙하를 넣어 마시는지 아니?" 당시 캠프는 워낙 추워서 얼음을 만드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해답을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1965년 남극에서 빙하 시추 작업을 하던 프랑스 과학자 클로드 로리우스(Claude Lorius)로부터 시작된다. 로리우스 박사는 러시아의 남극 관측 기지인 보스토크 기지에서 시추 작업을 수행했다. 남극 내륙에 위치한 이 기지는 해발 3488m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83년 7월 21일 지구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 영하 89.2도가 관측된 곳으로 남극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혹독한 남극 환경에서 고된 작업을 마친 후 밤마다 위스키 한잔을 즐겼다. 보통 얼음을 넣어 마시곤 했는데 하루는 얼음 대신 시추 작업 후 남은 빙하 코어 한 조각을 넣었다. 놀랍게도 마치 샴페인을 따른 것처럼 공기방울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한참 동안 위스키 잔을 응시했다. 터져 나오는 공기 방울을 보면서 빙하 속에 과거의 대기가 보존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극 탐험을 마친 후 고국으로 돌아가 빙하에 포집된 공기를 분석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빙하는 오랜 세월 눈이 쌓여 형성된다. 처음에는 빙하 최상단 눈송이들 사이로 대기가 자유롭게 대류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눈이 쌓이면 눈송이 간격이 좁아지고 대기가 확산의 원리에 따라 이동한다. 최종적으론 약 50~100m 깊이에서 대기는 완전히 빙하에 포집된다.
로리우스 박사는 남극 빙하에 포집된 과거 대기를 통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과거 80만년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따뜻한 간빙기에도 이산화탄소의 평균 최대 농도가 약 280PPM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24년 7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Mauna Loa Observatory)에서 측정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425.55PPM이다. 과거 간빙기의 평균 최댓값보다 100PPM 이상 높은 수치다. 이 데이터들은 인류의 산업 활동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로리우스 박사는 2023년 3월 21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빙하 코어 연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과학은 성실한 연구와 끊임없는 탐구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상의 작은 순간에 위대한 발견이 탄생하기도 한다. 나도 로리우스 박사가 과학에 품었던 열정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