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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남극서 데려온 물고기 '인공번식'에 도전
인공산란을 하는 남극검은암치.
누군가 남극 물고기 이야기에 남극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과 함께 남극 바닷속 물고기의 모습이 담기면 좋겠고, 현장에서 연구하는 장면 또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은 신비로운 남극의 자연을 쉽사리 볼 수 없기 때문인데, 나 또한 이에 동감한다. 그러나 남극 물고기 연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차가운 남극 바다에서 물고기를 채집한 후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년에 3~4개월이다. 이용할 수 있는 채집 도구는 낚싯대가 유일하다. 통발도 사용할 수 있으나 물고기보다는 개불, 복족류, 고동류와 거미불가사리 등 연체동물이 잡힌다.
해양생물 채집이 가능한 3~4개월을 제외하면 얼어붙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채집할 수 없고, 채집된 물고기에게 공급할 해수를 확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전 세계 모든 물고기 중에서 남극 물고기 연구가 가장 더딘 원인이다. 아쿠아리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남극 물고기를 산 채로 국내에 데려와 연구하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산란과 인공수정을 거쳐 발생 중에 있는 검은지느러미남극빙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극 물고기를 키워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개체 수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종류가 워낙 한정되어 있고 개체 수도 적은 까닭에 어떤 실험을 위해 이들을 소모하기에는 너무나 귀한 몸이다. 생리학적 실험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개체 수가 필요하다. 같은 종이라도 각 개체의 조건과 유전 성질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남극 물고기의 국내 유입'이라는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은 인공수정을 통한 번식이었다. 남극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남극 물고기가 알에서 깨어나고, 새끼 물고기가 헤엄치며 커나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뿌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과학적 연구 목적에 한하여 남극 물고기의 채집과 실험이 가능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남극에서 잡아와서는 안 되지 않을까.
남극 물고기를 꾸준히 관찰하고 정성을 담아 보살핀 끝에 기회가 찾아왔다. 3년간 키워오던 남극검은암치 여섯 마리 중 유독 배가 불러오는 개체를 확인하였다. 물고기의 인공산란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인간융모성성선자극호로몬이라는 인공산란유도제를 암컷 복강 내에 반복 투여하여 인위적인 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기존에도 황복, 동자개, 넙치 등 물고기 인공번식 경험이 다수 있었지만 남극 물고기 인공번식을 직접 수행하려고 하니 몇몇 참고문헌을 통해 이미 방법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막막함이 밀려왔다. 일단 낮은 수온으로 인해 일반 물고기에 비해 신진대사가 늦다는 가설하에 인공 산란유도제를 좀 더 일찍, 오랜 기간 투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적은 양을 반복 투여하면서 매일 몇 차례씩 물고기 상태를 관찰하였다.
며칠 후 저녁 물고기의 생식공에 투명한 알의 빛이 보였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미리 준비한 대로 물고기의 복부를 가볍게 압박하는 방식으로 산란을 유도하였다. 봇물 터지듯 시작된 산란은 5분여간 이어졌다.
계측한 결과에 따르면 남극검은암치 암컷 한 마리는 약 7000개의 알을 낳았다. 연어 암컷 한 마리가 약 3000에서 3500개의 알을 낳는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넙치는 한 번에 14만~40만개의 알을 낳으니, 많다고 볼 수도 없겠다.
다음으로 인공수정을 위하여 수컷으로부터 정자를 채취하는 단계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머지 다섯 마리 중 한두 마리의 성숙한 수컷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 세계 최초로 남극대륙이 아닌 북반구에서 남극 물고기의 인공수정을 시행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눈앞이다. 그러나 운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고기 다섯 마리 중에 수컷은 없었다. 모두 미성숙한 암컷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시나브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다음 해 채집된 검은지느러미남극빙어와 남극에메랄드암치는 암수 모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을 대상으로 산란과 인공수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인공수정에서 발생을 거쳐 알에서 깨어날 때까지 선행연구에 의하면 5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인공번식이 많이 이뤄지는 물고기들은 이 과정이 짧게는 3일, 길어야 한 달 이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오랜 시간이다.
왜 남극 물고기 대상 인공번식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는지도 설명 가능하다. 하긴 남극대륙을 떠나온 물고기가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데 반년은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정답: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