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05-26 09:10teen.mk.co.kr
2026년 07월 11일 토요일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해 농업, 음악, 과학, 역사, 군사, 지리, 의학 등 조선의 거의 모든 분야를 혁신한 성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세종대왕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은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돈', 즉 화폐를 통해 조선의 경제를 바꿔보려는 시도였습니다.
고조선시대의 한반도 국가들은 금속화폐나 철을 화폐처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쌀과 삼베 등 현물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오랜 세월 금속화폐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물을 화폐로 사용하면 국가가 불편한 일이 많았습니다. 세금으로 쌀을 걷으면 일단 사람이 그것을 관청으로 들고 와야 하고 관청은 그것을 썩기 전에 사용해야 했습니다. 민간에서도 현물만으로는 물건을 거래할 때 가격 기준이 불분명하고 지역마다 물건의 시세도 달라 쉽게 거래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행정체계를 만들어 나가던 세종대왕은 현물거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려 말부터 조금씩 사용되던 일종의 지폐인 '저화'를 대대적으로 유통시켰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민간 거래를 편리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행정과 세금 제도 전반을 효율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화폐가 통용되면 물자 배분과 세금 계산, 국가 재정 운영이 모두 체계적이고 간편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모든 상거래에 저화를 무조건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쌀과 삼베 등을 거래에 사용했습니다. 현물은 그 자체가 생필품이므로 유사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저화는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어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종이로 만든 저화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구리로 만든 동전인 조선통보를 유통시키려 했습니다. 동전은 저화보다 실물성이 강하고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좀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금은 여전히 쌀과 베로 걷혔고, 관청에 물자를 납품할 때도 조선통보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쌀이나 생필품을 주고받으며 거래했습니다.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화폐경제가 자리잡지 못한 조선시대상'을 그려달라는 요청에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화폐 정책이 계속 실패하자 세종대왕은 1426년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조선통보를 사용하지 않고 현물로 거래하다 적발되면 장 100대, 수군 강제 입대, 가산 몰수라는 초강경 처벌을 시행한 것입니다. 결국 전국 각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물교환하다 적발된 사람이 가산을 몰수당하거나 수군에 끌려가고 가족들이 굶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결국 종로 일대의 시장이 방화로 불타버리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곳곳에서 폭동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세종대왕은 화폐 도입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 백성들은 저화나 조선통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은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사회였던 데다가 산지가 많아 물품의 유통이 어려웠습니다. 화폐가 있다고 한들 그것을 사용할 곳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또 국가가 세금을 사용하려면 화폐를 가지고 필요한 쌀, 무기, 옷감 등을 얻을 시장이 필요한데 이런 시장이 없으니 현물을 세금으로 걷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조차 화폐를 실물처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도 화폐를 믿을 이유가 없고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조선은 끝내 체계적인 화폐 기반 경제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약점으로 드러났습니다. 군량, 무기, 병력을 빠르게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선은 여전히 현물을 걷고 분배하는 방식에 의존했습니다. 전쟁에 중요한 것은 병력뿐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정과 유통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조선은 이미 화폐경제가 자리 잡은 일본과 청나라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폐경제는 결국 화폐가 쓰일 시장과 그것을 믿고 쓰려는 사람들의 신뢰가 마련돼야 실현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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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시대 한반도 국가들은 중국에서 제조한 반량전, 오수전 등
금속화폐나 철을 화폐처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는 쌀과 삼베 등
현물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금속화폐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