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04-14 09:09teen.mk.co.kr
2026년 07월 11일 토요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베개 밑을 만져봤는데, 내가 넣지도 않은 5만원짜리 지폐가 나왔다면 당연히 날아갈 듯 기쁠 거예요. 5만원으로 놀이공원도 가고 맛집 탐방도 할 수 있으니까요. 돈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지폐가 왜 가치를 가지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죠. 우리가 5만원짜리 지폐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저 그렇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로 가면 아무도 5만원짜리 지폐를 돈이라고 믿지 않을 테니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하게 되겠죠.
즉 화폐는 사람들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화폐에 대한 신뢰는 수없이 흔들렸고, 그때마다 세상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화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제국이 멸망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입니다. 불과 100여 년 전인 서기 200년대 초반만 해도 로마제국은 약 45만명의 병력을 유지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는데 왜 그렇게 빠르게 무너졌던 걸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게르만족 침입'이라는 원인은 사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입니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돈', 즉 경제문제였죠.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내전을 통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본래 로마의 정통 황실 가문 출신이 아니었고 귀족들의 지지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군대의 힘에 의존해 권력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반란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암살 위협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세베루스는 자신의 정통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의 권력 기반인 군인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주었습니다. 로마 군단병의 급료를 두 배로 올리고 퇴직금도 파격적으로 인상했으며 상비군 규모 역시 기존 30만명에서 45만명 가까이 대폭 증원했습니다.
그 덕분에 세베루스는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군사력을 강화해 국경 지역의 분쟁을 효과적으로 진압했고 제국의 행정체계를 정비하며 정치적 안정도 이뤄냈습니다. 그의 치세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은화.
그러나 강력해진 군대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로마는 데나리온 은화를 사용했는데 제국 내 은광들은 점차 고갈되고 있었고 더 이상 정복 전쟁으로 새로운 자원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로마는 원래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며 금, 은, 노예 등 막대한 자원을 확보했지만 이제는 정복할 수 있는 땅이 거의 없거나 너무 멀어서 오히려 방어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지역뿐이었습니다. 은은 점점 부족해지고 자원 유입도 줄어드는데 군대는 커지고 급여는 인상된 상황이었죠.
세베루스는 결국 데나리온 은화의 은 함량을 약 75%에서 50% 정도로 낮춰 더 많은 은화를 발행하도록 했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점차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상인들은 은화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같은 물건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세베루스 치세 때는 아직 은화가 잘 통용됐고 경제도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화폐 정책은 이후 황제들이 더 과감하게 은 함량을 낮추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카라칼라는 군대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 병사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며 세금을 늘렸지만 그만큼 화폐의 은 함량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로마의 화폐는 점점 값싼 금속 조각으로 전락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더 이상 '돈'이라고 믿지 않게 됐습니다. 결국 세베루스가 선택한 '돈 찍어내기'는 잠깐의 안정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로마 경제 붕괴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3세기 중반 로마는 황제가 수시로 바뀌는 '군인 황제 시대'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시기 황제들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돈을 찍어냈고 심할 때는 은 함량이 5% 미만으로 감소하며 화폐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선 세금을 은화(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가 아닌 곡식이나 물건으로 걷었고 시장에서는 물물교환이 다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화폐 경제가 무너지자 로마의 상업과 세금 체계도 무너졌습니다. 국가는 군대를 유지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했고 강력했던 로마 군단은 예산 부족으로 급여와 장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며 몰락해 갔습니다. 이로 인해 국경의 수비가 약해지자 게르만족과 훈족이 대거 침입했고, 결국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 장군 오도아케르에게 황제가 쫓겨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마는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이미 내부에서부터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이 사라진 화폐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 여파로 강력했던 로마제국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무너져 갔습니다. 결국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게르만족의 칼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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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황제 시대
3세기 중반은 로마에서 군대의 지지를 받은 여러 군인 출신 황제들이 짧은 기간 동안
계속 교체되었던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정치적 혼란과 내전이 자주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