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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1일 토요일

일본이 마구 찍어낸 돈, 한국전쟁 원인이라고요?

임하빈 산현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03-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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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한반도의 자원을 수탈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등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겼습니다.

일본은 해방 이후 한반도를 떠나면서도 한반도에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남겼으며,

이는 후에 6·25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6.25전쟁 군인들과 피란민.

 

 

1945 8 15,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의 항복으로 한반도는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독립국가로서 체제를 갖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8선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소련군,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할 예정이었고 식민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조선총독부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그들의 귀국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일본 본토는 심각한 식량난과 주택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요 도시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는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에만 100만명, 다른 식민지까지 합치면 600만명 이상의 일본인이 한꺼번에 귀국한다면 일본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때부터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과 남아 있는 일본인 사이의 애매한 공존이 시작되었고, 전후의 혼란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겨놓은 수많은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뱅크런이 발생하자 조선 은행들은 돈을 지급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돈을 지급하지 못하면 은행은 파산하게 되고, 이는 사회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조선에 남아 있는 일본인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은행권 엔을 대량으로 찍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선 엔.

 

 

그러나 돈을 많이 찍어내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는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조선총독부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떠나야 할 조선의 경제 상황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조선은행에서는 모든 윤전기가 풀가동되며 조선은행권 엔을 마구 인쇄하기 시작했고, 일본 본토에서 돈을 인쇄한 후 수송기로 조선에 들여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돈을 찍어낼 종이가 모자라자 저질 종이에까지 새 화폐를 찍어낸 끝에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선은행권은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에게 뿌려졌습니다. 그들은 이 돈을 사용해 조선에서 금, , 쌀 등 가치 있는 물품들을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중에 풀린 엄청난 돈 때문에 화폐 가치는 급락하고 물가는 폭등했습니다. 쌀값만 해도 1945 8월에 한 가마(80) 60원이었던 것이 불과 1년 만에 2500원이 될 정도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미군정이 화폐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미 물가가 폭등해버린 상황이라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 시기 북한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정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강력한 물가통제 정책을 실시해 물가를 바로잡았습니다. 소련군이 미군과 달리 조선인,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마구 약탈했음에도 북한 지역 주민들은 소련군정에 큰 불만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때 남한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소련군정은 물가도 잡고 잘하는데 미군정은 무능하다고 주장하며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활동과 국민의 불만이 합쳐져 1946년에는 대규모 노동자 파업과 시위가 발생했고,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등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며 1948년에 갓 건국한 대한민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지지를 받아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은 대한민국의 혼란을 지켜보며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해 전쟁 준비를 시작했고, 결국 1950 6 25일 새벽,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엄청난 돈이 6·25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대한민국 내부의 불안을 초래하고 김일성이 이를 남침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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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

은행은 예금주들이 맡긴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투자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지고 있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은행이 불안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예금주들이 몰리게 되는데 은행은 당장 모든 돈을 돌려줄 수 없습니다.

돈이 없다는 소식이 퍼지면 나머지 예금주들도 은행에 달려와 돈을 달라고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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