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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19일 토요일

봉건시대를 끝낸 절대왕정, 일등공신은 화약무기

군사혁명과 중상주의의 출현

군사기술중상주의군사혁명

임성택 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입력 2022-09-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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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알려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대표적인 절대군주로 꼽힌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철판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들,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 중세시대 배경의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우리는 고풍스러운 장비와 냉병기를 사용하는 영웅의 모습에 열광한다. 현실과 다른 상상력이 반영될 수 있는 판타지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을 주로 중세로 설정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조금 넘어가서 미국 남북전쟁이나 프랑스 대혁명기에 이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병사들은 창과 칼 대신 규격화된 제복과 총을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영웅 대신 군대를 조율하는 지휘관이 주인공이 된다.

전쟁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화약'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화약은 대포와 화승총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단순한 쇠구슬을 발사하는 정도였지만 700~900m 밖에서 발사돼 날아오는 2~5㎏의 포탄은 그 운동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특히 병사들을 밀집대형으로 유지시키던 당시 전쟁 방식에는 치명적인 무기가 됐다.

화승총의 발달도 무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사들의 판금 갑옷은 총 앞에서 무력했고, 차라리 무거운 갑옷을 벗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초기 화승총은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명중률이 형편없이 낮았지만 밀집대형을 이루어 일제사격을 가할 경우 적군에 명중할 확률이 높아지므로 보병의 주력 무장으로 자리 잡았다.

대포는 도시 외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직으로 높게 쌓았던 성벽은 포격에 취약했다. 사정거리가 긴 대포는 농성 중인 수비군으로서는 요격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포격으로 성벽을 무너뜨림으로써 방어선 안으로의 돌진을 노릴 수 있었다. 3겹의 성벽으로 난공불락이라 일컬어지던 콘스탄티노플이 1000년 만에 함락된 것에도 대포가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 포격에 대비한 새로운 성벽을 고안하는 시도가 나타나는데 포탄의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수직의 돌벽 대신 비스듬한 벽돌 및 흙벽을 구축했다.

군사기술의 발달은 다른 사회문화적 요인과 결합돼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야기했다. 중세 봉건제 사회가 저물고 절대왕정이 출현한 것이다. 과거에는 전쟁 때마다 왕이 지역 영주들의 사병들을 소집해 군대를 꾸렸다. 핵심 병종인 기사를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지방 영지 정도의 경제력으로 어느 정도 감당이 되는 수준이었다. 당시의 왕들은 영주들과 충성계약을 맺은 상태였지만 영주들의 이익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왕의 권력이 약하고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병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근대적인 군대는 신식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어려워졌다. 일사불란하게 밀집대형을 유지하는 화승총 부대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상비군 제도를 통해 가능했다. 군대의 보급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 관료제가 도입됐다. 이러한 신식 군대 제도를 유지하려면 봉건영주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는데 이로 인해 대규모 영토를 보유한 절대왕정과 중상주의가 나타났다. 절대왕정은 왕의 권력이 다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절대왕정 국가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관계에서 군사 및 학문, 예술 측면에서 우위에 서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 확보가 필수였다. 이러한 국가의 부를 증진하기 위한 정책들을 통틀어 '중상주의'라고 부른다.

중상주의는 오늘날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자유경쟁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에 재정적 기여를 하는 특정 상인들에게 생산과 유통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주어졌다. 상인들은 점자 자본기업화되어 봉건시대부터 유지돼온 길드 중심의 상공업을 약화시켰고, 독점적 이윤을 확보해 그중 일부를 정부에 공급했다. 자연스럽게 중상주의는 재화의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에게 유리한 경제정책에 집중했다. 귀금속을 국내에 축적해 전쟁 수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억제하는 보호무역주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또한 새로 발견한 신대륙과 아시아 지역을 식민지로 확보하는 제국주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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